중동평화 깬 「페만」의 포성/이라크군 쿠웨이트 전격점령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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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배상」 제의 거부한 계산된 도박/미ㆍ소ㆍ아랍국 개입여부가 변수
이라크가 2일 새벽 기습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함으로써 중동지역이 또다시 거센 전화에 휘말리게 됐다.
이라크는 이날 무력으로 쿠웨이트 전역을 장악한 데 이어 쿠웨이트 국왕에 대한 폐위및 국회해산을 발표,사실상 쿠웨이트정부를 전복시켰다.
이라크의 이번 침공은 표면적으로는 뜻밖의 일이지만 그간의 사태발전 경위를 살펴보면 고도로 계산된 수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라크는 지난달 17일 산유쿼타 위반을 구실로 쿠웨이트등에 대한 비난을 시작하면서 3만여명의 병력을 국경지역에 배치,무력시위를 통한 압력을 가했다.
이라크는 이어 25일부터 열린 제네바 OPEC회담에서 원유가 인상을 관철시킨 후 겉으로는 직접 협상에 나섰지만 오히려 국경투입병력을 10만명선으로 배가,쿠웨이트에 대해 일방적인 백기를 종용했다.
이라크는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재에 나섰던 이집트및 미국등에는 「무력 불사용」의 다짐을 확약함으로써 이들의 오판을 유도하는 양동작전을 펴기도 했다.
이라크가 아랍권및 미국등의 예상되는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대도박」을 감행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영토문제다.
이라크는 대쿠웨이트 비난을 전개하면서 쿠웨이트가 양국 국경에 자리잡고 있는 루밀라유전에서 막대한 원유를 도굴해갔다고 주장,이 유전을 노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라크는 또 직접 협상과정에서 1백40억달러 규모의 현금배상외에 쿠웨이크령의 부비얀ㆍ와르바 등 두 섬의 할양을 요구했다.
이 섬들은 페르시아만에 접해있는 것으로 이라크로 하여금 이란과 직접 접하지 않고도 페르시아만으로 진출케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협상에서 『현금외에는 일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결국 이라크의 기습장악은 쿠웨이트로부터 중대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주요 이유는 쿠웨이트 강점을 통한 경제문제의 해결이다.
이라크는 지난 8년간에 걸친 이란과의 전쟁을 통해 서방측에 5백억달러,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 등에 3백억달러등 8백억달러 정도의 외채를 안고 있는데 그 이자부담만도 연 50억∼70억달러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라크는 이같은 외채부담외에 전쟁으로 인한 산업시설 황폐가 심화,종전당시보다 연 1백40억달러 정도씩 원유수입이 감소되고 있으며 특히 원유의 주생산지인 키르쿠크ㆍ바스라유전 등이 반쯤은 「녹슬어」 있을 만큼 국가재정이 위기에 몰려있었다.
이라크는 설령 쿠웨이트에 대한 계속 지배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쿠웨이트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화정」 형태의 괴뢰정부를 세워 철군협상과정에서 최대한 실리를 얻어낸다는 계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이라크의 계산이 간단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쿠웨이트의 전복에 사우디등 인근 아랍국은 물론 미소등 강대국들이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쿠웨이트를 포함,이라크의 타깃이 됐던 아랍에미리트등 6개국으로 구성돼 사우디가 맹주역할을 하고 있는 GCC(페르시아만 협력기구)가 공동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만큼 사태의 「도미노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강력대처가 불가피한 입장이다.
문제는 이들이 막상 실력대결을 하려해도 이들의 군사력이 이라크에 비해 너무 열세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 국가들은 사태발생후에도 변변한 공식성명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사우디조차 이라크에 대한 초계비행을 삼가고 있을 정도로 GCC는 무력함을 노출시키고 있다.
중동의 석유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미국과 EC등 서방국들은 일제히 즉각 철군을 요구하면서 대응책 수립에 나섰다.
미국은 백악관성명을 통해 『모든 조치를 다 고려중』이라고 강력경고를 한 데 이어 지중해의 해군에 비상경계를 내리고 인도양에 있던 항모 인디펜던스호를 페르시아만에 급파하는등 무력시위를 벌였다.
소련도 이날 이라크에 대한 잠정적인 무기중단방침을 밝혀 견제를 공언했고 EC및 아랍외무장관들도 각각 비상회의를 소집,해결책을 강구중이다.
그러나 부시 미대통령이 『현시점에서 미군의 파병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이들 관계국들이 무력개입과 같은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라크는 주변국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방해세력은 무차별 공격한다』는 강경방침과 함께 전군에 대한 총동원령을 내리고 쿠웨이트 진주군을 강화시키는 등 일전불사의 전의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에대해 미국과 사우디등은 선뜻 군사제재를 가할 수도,그대로 방관만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상황은 이라크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중동및 세계 석유시장의 안정회복을 위해 미국등 관계당사국들이 「응징」의 칼을 뽑을지,아니면 동서간의 긴장완화라는 추세속에서 「막후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책을 찾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김용일기자>
□이라크ㆍ쿠웨이트 국력비교
●이라크

<1>군사력
▲총병력수 1백만명
▲육군:95만5천명(민병 48만명 포함) 군단7,기갑사단7,기계화사단7,전차 5천5백대
▲공군:4만명 요격기ㆍ전폭기 513대
▲해군:5천명 프리깃함 5척,초계정 20척

<2>인구
▲1천6백만명 국민다수는 시아파회교도,집권세력은 수니파

<3>면적
▲43만8천3백평방㎞

<4>경제
▲석유생산량 하루 300만배럴,비축량 1천억배럴,외채 6백억∼7백억달러 GNP 3백40억달러,1인당 GNP 1천9백50달러(88년 기준)
●쿠웨이트

<1>군사력
▲총병력수 2만3백명
▲육군:1만6천명 탱크 280대
▲공군:2천2백명 미라주 25대,스카이호크 30대,헬기 40대 등
▲해군:2천1백명 미사일 적재함,해안순찰선함 등 1백척

<2>인구
▲1백70만명 국민다수는 수니파 회교도. 집권세력은 수니파,인구절반이 아랍계 외국인

<3>면적
▲1만7천8백19평방㎞

<4>경제
▲석유생산량 하루 1백50만배럴,비축량 8백79억배럴 GNP 2백62억달러,1인당 GNP 1만3천6백80달러(88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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