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해줘야 할 정부의 책임/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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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의 어떤 정책이나 조치도 모두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고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조치가 설사 그것이 하루 아침에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이해 못하고 거부한다면 실현될 수 없다. 정책이 성공하자면 내용도 좋아야겠지만 국민의 납득과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정부로서는 평소 혹시라도 국민의 오해가 없는지,혹시 국민에게 궁금증은 없는지 항상 민감하게 살펴야 하고 끊임없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곧 정권유지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우리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해주고 납득시키는 노력이 통 부족한 것 같다. 배짱이 좋아서 그런지,국민을 너무 믿어 그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탓인지,국민이 그런 일은 몰라도 돼 하는 무시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지 궁금한 일이 있어도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거나 그냥 깔아뭉개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가령 모처럼 기대를 모았던 지난 주 서울에서의 남북대화가 끝내 성사되지 못한 과정을 봐도 그렇다. 남북간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이 회담장소를 둘러싼 이견이었는데 회담의 성사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때 그까짓 장소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왜 아카데미하우스는 안되고 꼭 인터컨티넨탈 호텔이라야 되는가 하는 의문들이 많은 보통사람들 사이에 제기되었다. 북측대표의 신변보호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긴 했지만 왜 아카데미하우스보다 이쪽이 신변보호에 유리한지,또는 당국이 다소 여건은 나쁘더라도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아카데미하우스로 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걸핏하면 트집을 잡는 북한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 정부가 북측과 접촉하는 그 시간까지도 전민련과 티격태격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의문에 대해 정부의 어느 쪽에서도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해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의문에 관해 아마 정부로서는 당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충분한 까닭이 있었을지 모르고,관계당국자나 전문가들은 이런 의문들이 제기되는데 대해 오히려 답답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슴속에 육도삼략이 다 들어있은들 입을 닫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의문이 있고 그리하여 이번 회담이 깨진데는 정부책임도 있다는 소리가 나옴으로써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다. 평소 과묵을 미덕으로 알아서 그런지,생각이 못미쳐서 그런지 설명이 부족한 일들이 많다. 고르바초프 친서내용이나 7ㆍ20민족대교류선언 및 그 후속조치에 관한 7ㆍ23 3부장관합동회견 같은 것은 국내정치 차원을 넘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야당의 김을 빼기 위한 국내정치용으로 발표시기가 선택됐다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었다.
7ㆍ20에는 야권 3자의 통합결의가 있었고 7ㆍ23에는 야당의원들의 사퇴서가 제출되었는데 이런 야당의 움직임을 왜소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설익은 정책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말들을 믿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 일부에라도 그런 의혹이 있는 이상 어떤 형태로든 회답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해명할 일을 해명 않으면 그것을 묵시적으로 시인한다는 뜻이 되는데 정부의 도덕성에 큰 손상이 갈 그런 의혹을 정부는 시인하는 것인가.
정부나 여당은 항상 말해왔다. 통일이나 외교와 같은 문제는 초당적으로 협의하고 국민적 합의의 기반위에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최근 중요한 대북정책에 있어 야당에 형식적인 사전통고는 있었어도 말 그대로의 협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내 관계기관과의 협의조차 제대로 됐는지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범민족대회를 허용키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즉각 당국자간에 해석이 달랐고 정부기관안에 은연중 강성의 반대기류가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물론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책은 정부안에서도 반대가 있을 수 있고 완강한 반대여론에 직면하기가 십상이다. 그렇지만 그것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그럴수록 더 열심히 설명하고 납득시키자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며 그런 사회적인 찬반논쟁의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반대가 있다 하여 내용을 비밀에 부치고 강행하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각제도 그렇다. 대통령제와 더불어 나무랄 데 없는 민주제도라는 내각제가 오늘날 이처럼 푸대접을 받는 핵심적인 이유의 하나는 내각제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없이 밀실에서 몇사람이 비밀리에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부의 설명부족 또는 설명태만 현상이 비민주적 체질에서 온 것인지 미숙에서 온 것인지 단정하긴 어렵다. 아마 어떤 경우는 민주화가 덜 된 체질탓일 것이고 어떤 경우는,미숙탓일 것이며 둘 다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설명부족 자체가 비민주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발전에 따라 정부에 설명을 요구하는 힘은 갈수록 강해지고 아울러 갈수록 더 세련된 설명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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