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점수제」 부작용을 경계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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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치안본부가 8월1일부터 연말까지 주요 범죄의 예방과 검거등 각 경찰국과 경찰서의 민생치안 실적을 점수화해서 평가하겠다는 고육지책을 들고 나왔다.
치안본부가 이런 시책까지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경찰은 그동안 나름대로 민생치안의 강화를 꾀해 왔으나 범죄는 좀처럼 고개를 숙일 줄 모르고,이에따라 국민의 치안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가셔지지 않은 상태다. 이제는 일선 경찰관들마저 범죄에 지쳐 예방활동은커녕 발생범죄의 뒤치다꺼리도 힘겨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히 느껴진다.
범죄의 모든 책임을 경찰에만 돌릴 수는 물론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경찰은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후의 안전판이기 때문에 경찰의 그런 무기력한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쇄신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가 치안본부의 실적 점수평가제의 취지에 대해서만은 일단 수긍하는 것도 그러한 뜻에서다. 그것은 민생치안에 대한 개개 경찰관들의 책임의식을 일깨우고 인사와 포상에 있어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찰의 기본적인 근무조건에 대한 변화는 없이 이런 다그치기식 시책만으로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자칫하면 효과는 커녕 치안활동이 점수따기식으로 변질되어 새로운 문제를 파생시킬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그동안 교통법규위반 집중단속기간중 일선 교통경찰관들에게는 하루 단속건수가 할당되어 왔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함정단속ㆍ융통성 없는 기계적 단속으로 인한 시민과의 마찰등 부작용이 더 컸다. 어떻든 그로 해서 교통질서가 바로잡혀졌다면 감수할 만도 한 일이었겠으나 효과는 집중단속기간 때 뿐이었다.
이번 5대 범죄에 대한 실적점수제는 그 부작용이 교통위반 단속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걱정일는지 모르나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단순한 절도ㆍ폭행을 강압적인 수사로 강도나 조직폭력으로 만드는등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또한 거꾸로 수사가 힘든 강력사건보다는 손쉬운 사건들에 대한 단속과 수사에 치중해 점수만 쌓아올리는 경향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뿐만 아니라 책임문제를 놓고 경찰국별ㆍ경찰서별 이기주의가 극심해져 관할싸움이 심해질 것이고 수사공조체제가 약화될 우려도 큰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점수제가 고육지책임은 이해하면서도 이것이 정도는 아님을 치안책임자가 분명히 인식해줄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경찰관들이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생들이 점수에 매달리듯 하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활동을 점수화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자발적인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어렵지만 정도를 걷는 경찰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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