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통합 다시 “지지부진”/진전없는 협상… 속사정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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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총재 차기 대권구도 밝혀 이견 돌출/평민 반대론자 제외 부분합당론도/민주 김총재 의도 경계 신중론 대두
야권통합 논의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평민ㆍ민주당과 재야의 통추회의 등 3자는 이번 주말께 「범민주 통합수권정당추진 15인 협의기구」 첫모임을 갖고 지난 20일 3자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가능한 한 최단시일내에」 통합야당을 결성하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평민ㆍ민주 양당간에는 통합시기ㆍ절차ㆍ지도체제 등에서 이미 현격한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다.
통합열기와 여론의 압력에 가려져 「봉합」 상태에 있던 실무현안들이 돌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2선퇴진 불가ㆍ부통령제 개헌을 거론,사실상 통합신당의 지도부참여와 차기 대권구도를 밝힌 데 이어 평민당 일각에서 이기택총재 등 민주당 일부를 대상으로 한 부분통합론까지 나오자 민주당내 이총재 등 통합우선파들도 주말 사이에 신중통합론으로 돌아선 형국.
이에따라 9월중 합당은 이제 물건너간 격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대두되고 있다.
○통합결의대회 미뤄
○…당초 야권3자는 지난 21일 보라매공원 집회에서 8월중 부산ㆍ광주 등 지방 대도시를 돌며 통합결의 대회를 갖기로 합의했었으나 이 계획은 9월중으로 연기될 것이 확실하다.
평민당은 15인 통합협의기구에서의 일정 조정을 통해 부산ㆍ광주를 포함한 3∼4개 도시에서 8월10일께 이후에 집회를 갖기로 하고 이를위해 김대중총재의 서독 방문일정(8월27∼9월7일)도 재검토한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당론조정ㆍ국민여론 수렴의 필요성과 휴가철의 불리한 조건을 들어 9월 정기국회에 임박해서나 집회를 갖자는 태도.
민주당은 대신 8월중 지방도시를 순회하면서 옥내집회를 통해 통합에 관한 지역여론을 수렴하는 한편으로 통합시기ㆍ지도체제ㆍ의원직사퇴 등에 관한 국민여론조사를 3자 공동으로 공인된 여론조사전문기관에 의뢰,통합과정에 반영시키자는 주장이다.
대중집회를 9월 정기국회시기로 미루면서 「우리는 왜 등원을 거부하는가」를 주제로 사퇴 및 야권통합의 당위성을 국민여론에 호소하자는 민주당의 계획에는 평민당의 막후 대여협상­일방등원 가능성에 미리 쐐기를 박자는 뜻이 숨어있다. 김대중총재의 「개헌」 발언이 민주당 지도부의 의구심을 그만큼 증폭시킨 결과다.
또 밀실합당이라는 당내의 비판에 대응하면서 사퇴정국을 통합정국으로,통합정국을 개헌정국으로 숨가쁘게 몰아가는 듯한 김대중총재의 페이스를 견제하자는 복안도 가미된 인상.
○법적 정통성 확보책
○…평민당은 또 15인 협의기구에서 먼저 합당선언을 결정,실행에 옮긴 뒤 지도체제ㆍ조직책 등 나머지 문제를 뒤에 논의하자는 입장이고 김대중총재는 8월중 합당선언방침까지 천명했으나 민주당은 통합에 따른 일체의 실무절차를 3자간 합의한 뒤 맨 마지막으로 합당선언을 하자는 주장이다.
김대중총재는 28일 『통합하면 하나가 될텐데 누가 먹고 먹힌다는 얘기는 상식이하의 발상』이라고 민주당내의 통합 시기상조론ㆍ김총재 퇴진론자 들을 「피해의식」에 젖은 반통합주의자로 규정했으나 민주당은 「결혼식전에 동거부터」해서 김총재의 대권구도에 공연히 부응하는 결과는 피해야 한다는 입장. 합당후에 평민당이 국민여론의 압력을 내세워 대뜸 9월 국회에 들어가버리면 민주당으로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정당법상 평민ㆍ민주당간의 통합은 두 정당이 새로운 당명으로 합치는 「신설합당」에 속하며,이는 양당 수임기관(평민당무회의,민주정무회의) 이 합동회의에서 합당을 결의하고 선관위에 등록하면 끝난다. 평민당이 노리는 것은 이같은 법적 정통성을 먼저 확보해두자는 것.
이에 비해 민주당은 지난 5월 양당 통합대표들이 합의서명한 통합원칙인 「완결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즉 「통합한 뒤에는 정당의 조직과 운영에 관하여 결정이 유보된 부분이나 합의내용의 해석에 관하여 의문이나 다툼의 여지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5월8일 양당합의문)는 것으로 김총재의 거취가 달린 지도체제까지도 15인 기구에서 매듭지어놓자는 주장이다.
민주당내의 난기류에 다급해진 평민당일부에서 부분통합을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민주당의 통합파인 김정길의원은 30일 『평민당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고,이기택총재도 같은 입장으로 선회.
○책임 떠넘기기 예상
○…결과적으로 통합논의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으로,특히 9월 정기국회가 다가오면 사퇴정국 장기화에 통합협상의 지지부진한 점 등이 겹쳐 야당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난맥상까지 예상된다.
국민적 여망인 야권통합을 앞뒤 가릴 것 없이 결행하자는 평민당측 주장이나 통합되더라도 선거에서 표를 제대로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민주당의 주장이 각각 옳은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민들의 여론은 양당 모두에 비난의 화살을 보내는 식으로 나타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양당통합의 의지표명이후 김대중총재의 대권구도가 점차 표면화 되어가자 이에대한 의구심과 여론의 역풍을 신중히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최근들어 김대중총재는 『합당은 기정사실이며 내부적으로 다 되어있다』는 말을 공개ㆍ비공개 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민주당측은 이것이 김대중총재의 민주당 흡수작전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재야를 동원해 야권내에 여론을 조성,민주당을 통합의 명분속에 꼼짝못하게 가두고 그와같은 「야권의 대합의」를 바탕으로 민주당을 압박하는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민주당은 반발하면 야권통합 반대론자로 낙인찍히고,찬성하면 평민당에 먹히는 진퇴유곡에 처하는 셈.
민주당측이 이런 김대중총재의 전략에 은근히 제동을 걸면서 김대중총재의 대권집념이 결국 김총재에게 마이너스효과로 작용하는 시점이 오면 일방적인 야권통합 압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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