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 보면 가슴 떨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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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수경(왼쪽)과 손성주 상경이 내무반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20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서울경찰청 기동단 특수기동대 창신지구대. 아침부터 전.의경들이 이불 보따리, 빨래걸이와 라면 등을 트럭에 옮겨 나르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지원을 위해 이날 이곳 전.의경 3개 중대 350여 명이 제주도로 떠날 채비 중이었다.

◆ 올해 유독 지방지원 잦아=78중대 박효종(21) 수경도 내무반에서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 개인 짐을 꾸렸다. 올해는 유독 지방에 큰 시위가 많아 장거리 지원이 잦다. 5월 평택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6월 대구 건설노조 집회, 7월 포항 포스코 점거 사태 등 대규모 집회에 박 수경 소속 부대는 빠지지 않고 불려다녔다. 부산 APEC 정상회의 때 외엔 지방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지난해와는 대조적이다. 충북대 2학년을 마치고 지난해 4월 입대한 박 수경은 "입대한 뒤 이렇게 많이 다녀본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4만여 전.의경 대원들은 올 한 해 무척 바빴다. 다른 시.도로 지원을 나간 중대의 수는 올 9월 30일 현재 4700여 개에 달한다. 예년 평균은 2000~3000여 중대 정도다. 그만큼 전국을 무대로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지방을 떠돌아다닌 만큼 몸은 고단하다. "주로 잠은 학교 체육관이나 강당에서 자고 밥은 계속 도시락만 먹는데 소화가 안 돼요. 빨래할 틈도 없어서 몸에서 냄새가 나죠." 특히 포항에서는 시위기간 내내 장대비가 퍼부었는데 젖은 옷을 제대로 갈아입지도 못해 썩은 내가 진동했다.

◆ 폭력시위대가 가장 두려워=몸이 고생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과격.폭력 시위대와 맞서야 한다는 두려움이다. 박 수경은 "돌이나 쇠파이프 같은 불법시위용품으로 무장한 시위대를 보면 무서워서 가슴이 떨린다"며 "포항 형산로터리에서 노조원 5000명과 맞붙었을 땐 시위대가 삽으로 옆에 있던 의경의 손을 찍어 손가락이 잘리는 걸 봤다"고 말했다. 신참 의경들은 그런 시위에 한번 갔다오면 부상이 없어도 앓아 누울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하다.

공주대 1학년을 마치고 지난해 5월 입대한 같은 중대 손성주(20) 상경은 왼쪽 눈 밑에 아직도 거뭇한 상처가 남아 있다. 평택 대추분교에서 시위대의 죽창에 찔린 자국이다. 평택의 행정대집행은 불과 하루였지만 시위대가 처음부터 쇠파이프와 죽창을 들고 공격하는 바람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방패와 곤봉으로만 무장한 채 시위대 여럿의 공격을 당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겐 이런 상황은 차마 말 못한다. "뉴스 보고 부모님이 걱정하시면 '뒤에 있어서 괜찮았다'고 말씀드려요"라고 박 수경은 얘기했다. 이번 제주도 지원은 유례없는 '해외'원정이다. 인천에서 13시간 배를 타고 가야하는 데다 잠도 체육센터에서 자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손 상경은 "제주도에 난생 처음 가본다"며 웃었다. 박 수경과 손 상경 모두 "우리 보고 '폭력경찰'이라고 하지만 시위대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는데 싸움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이번엔 제발 죽창과 쇠파이프 없는 평화로운 집회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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