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 고혈압·과음·과로가 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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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50) 영국 총리는 최근 갑자기 맥박이 불규칙하다고 느껴 인근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부정맥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총리를 화급히 큰 병원으로 후송했고 블레어는 5시간 동안 전기충격.약물 투여 등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 미 대통령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도 재임 중이던 1991년 당시 67세 나이로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조깅 중 호흡곤란과 부정맥이 발생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 대한순환기학회는 96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병원.전남대병원.계명대병원 등 대학병원을 찾은 74만명의 심장질환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심장병 환자는 6년간 3.1배 증가했으며, 이 중 15.3%에 해당하는 부정맥 환자는 4.8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맥에 대처하려면 평소의 맥박 속도 등을 알아두어야 한다. 운동부하 심전도검사(左)와 24시간 심전도 검사(中) 모습, 서맥환자에게 삽입하는 인공심장 박동기(右).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질환=하루 10여만 번. 이는 분당 70회 정도(60~1백회)로 심장이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뛰는 횟수다. 부정맥이란 심장이 정상 속도와 규칙성을 잃고 빠르게 또는 느리게, 불규칙하게 뛰는 병.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재중 교수는 "부정맥은 누구에게도 생길 수 있는 흔한 현상이지만 정도가 심할 땐 졸도하거나 사망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놀랄 때, 운동을 할 때 등 힘든 상황에선 누구나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심장이 혈액 공급을 늘려 위급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한 조처다. 하지만 병적인 부정맥은 상황이나 심리 상태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그러면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연세대의대 심장내과 김성순 교수는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어지럼증.실신 등 다양하며 간혹 별다른 증상 없이 급사(急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심혈관질환이 있는 환자에게서 발생한 부정맥이 위험하다.

◇부정맥도 종류가 있다=가장 흔히 보는 부정맥은 조기(早期)박동. 일정하게 뛰던 맥박이 돌연 한 번씩 쉬다가 다시 뛰면서 발생한다.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각증상이 전혀 없어 건강검진 때 심전도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다.

증상이 있는 사람은 당시 맥을 짚어보면 맥박이 한 번씩 멈추고 쉬다가 뛰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재중 교수는 "조기박동은 24시간 계속하는 심전도 검사상 40% 이상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하며, 정상인에선 거의 문제가 없지만 고혈압.심근경색.협심증 등 환자에겐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블레어 총리나 부시 전 대통령이 경험한 부정맥은 심장, 특히 심방에 문제가 생겨 맥박이 빨라지는 심방세동이다. 맥박이 빠르고 불규칙해 심장에서 혈액을 제대로 짜주지 못하다 보니 심한 운동을 했을 때처럼 숨이 차거나 뇌 혈액 공급량이 줄어 어지러움증.실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노인 환자가 많으며 고혈압.협심증.과음.과로.심근경색.갑상선 항진증 등이 있을 때 발병하기 쉽다.

심방세동은 혈압이 뚝 떨어지거나 심장마비가 오는 등 응급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방치하면 수축을 충분히 하지 못한 심장에 혈액이 고여 혈전을 만든 후 뇌혈관을 막아 뇌졸중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실제 아무런 병이 없이 발생한 심방세동도 뇌졸중 위험을 5배 올리며, 심혈관질환이 있는 심방세동 환자는 뇌졸중 위험이 20배나 높다.

치료는 맥박을 규칙적으로 돌려주는 항(抗)부정맥제, 뇌졸중 예방을 위한 항응고제, 문제의 심장 부위를 전기로 지져주는 고주파 전극도자 절제술 등이 있다.

심실에서 발생한 빈맥은 즉시 응급조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많다. 원인은 심근경색.고혈압.심근 질환 등 원인 질환이 있는 경우가 40%, 나머지는 체질적으로 혹은 원인을 모른다.

◇신속한 대처를=김성순 원장은 "실신 등의 증상이 있을 때는 물론 맥박이 불규칙하고 잘 안잡히면서 가슴 두근거림.숨찬 증상.가슴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땐 증상 발생 후 5분 이내에 응급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으므로 지체 없이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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