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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 딛고 세계 최강 페달 확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불의의 총기사고로 중상을 입어 재기불능의 선고까지 받았던 사이클 선수가 세계 최고권위의 이벤트인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일주 도로대회) 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 세계 최강의 다리와 심장의 소유자로서 영예의 극치를 누리고 있다.
그레그 레몬드(29·미국). 좌절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사이클 스타다.
뜻하지 않게 엽총 파편에 맞아 등과 허리가 망가지고 사이클 선수로는 치명적이라 할 폐마저 손상을 입었던 불운의 주인공으로서 믿기 어려운 재기의 드라마를 엮어내 인간승리의 산 표본이라는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투르 드 프랑스는 세계 최고·최대 규모의 사이클 대제전. 룩셈부르크를 출발, 보르도∼마르세유∼파리(엘리제궁 골인)를 잇는(험난한 알프스와 피렌체 산록을 경유)총 연장거리 3천4백km나 되는 대장정의 레이스다. 프랑스를 비롯, 룩셈부르크·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 등 6개국 국경을 넘나들며 3주 동안 21개소구간의 레이스를 펼쳐 종합기록으로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프로급 절반 도중 탈락>
대회 총 상금이 1백만 파운드(한화 11억6천만원)로 우승자에겐 20만 파운드의 우승 상금이 지급된다. 이와 함께 우승 보너스도 엄청나 사이클선수들에겐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동경의 무대다.
그러나 프로 선수들조차 절반 이상이 도중 하차하는「지옥의 레이스」로 정평이 나 있다.
1903년 창설된 이래 지난 22일 끝난 올해대회는 88회째. 이 대회는 에디 머키(벨기에) 베르나르이노, 로랑 피뇽(이상 프랑스)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했다. 특히 레몬드는 2년 연속 우승과 함께 통산 세번째로 황금 재킷을 입는 최대의 영광을 누렸다.
89년도 투르 드 프랑스는 레몬드 신화를 연 충격적 무대였다. 2년 남짓한 공백을 딛고 「페달 밟기」에 나선 그가 이 대회 2년 연속 우승을 별렀던 강호 피뇽을 막판에 추월, 우승컵을 거머쥠으로써 세계 사이클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미 귀화 불 프로서 활약>
1m82cm·80kg. 지난 83년 세계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태생이나 미국에 귀화했고 현재 프랑스 명문 사이클 팀인 Z클럽 팀에서 활약 중으로 3년 계약으로 5백50만달러(한화 38억5천만원)를 받고있다.
투르 드 프랑스 출전은 올해가 다섯 번째. 처녀출전한 84년 대회에서는 3위에 올라 가능성을 보였고, 그 이듬해엔 준우승을, 이어 86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어 명실상부한 제1인자로 성가를 크게 떨쳤다. 미국 국적의 사이클선수가 투르 드 프랑스의 황금 재킷을 입은 것은 레몬드가 처음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87년4월. 친척들과 어울러 꿩 사냥에 나갔다가 오발사고로 납 탄환의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은 것.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레몬드는 이후 8개월에 걸친 투병생활을 해야했다.
그후로도 시련은 계속돼 퇴원 4개월만에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대에 올려졌고 총상 후유증이 도져 또 한차례 오른쪽 정강이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몬드는 사이클을 다시 타겠다는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처절할 정도의 금욕과 수련으로 심신의 재건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89시즌 들어 레몬드는 벨기에 ADR팀으로 연봉 35만 달러의「헐값」에 이적, 하루 6시간씩의 고된 훈련으로 재기를 향해 박차를 가했다.

<의지·집념의 영웅 탄생>
레몬드는 그해 3월 춘계 유럽 선수권, 5월 트럼프 국제도로대회(미국)에 잇따라 출전해 가능성을 확인한 후 6월 이탈리아 도로대회에 도전, 당당히 2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7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 찬연한 금자탑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꼭1년이 지난 90투르 드 프랑스에서의 연속 개가는 그의 비범한 의지와 집념이 꽃피운 더욱 값진 위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불세출의 사이클 영웅은 전인미답의 이 대회 3연패를 선언, 내년의 레이스에 벌써부터 불길을 당기고 있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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