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전문가 모자란다(자본시장 개방­이대로 좋은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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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증시 호황때도 인력양성 외면
국내의 전문 외환 딜러를 다 합쳐봐야 고작 1백명 안팎이다. 「전문」이란 말을 듣기에는 좀 뭣하지만 어쨌든 외환 딜러일을 보는 사람을 다 합쳐도 약 3백명에 불과하리라는 것이 관계분야 종사자들의 일반적인 추산이다.
이 정도의 인적자원은 뉴욕 월가의 큰 투자회사 1개사가 확보하고 있는 딜러들의 숫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자본자유화를 앞두고 금융ㆍ외환ㆍ자본시장의 정비 못지않은 발등의 불이자 또 하루아침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와 같은 전문인력의 확보 문제다.
『국제화,국제화하는데 국제화는 꼭 나가서 하는 것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국제화란 예를 들면 국내에서 국제금융업무를 너끈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려면 사람이 있어야지요. 제주도에 국제금융시장을 열자는 논의도 있지만 가장 큰 난관은 국제금융업무를 담당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홍희흠 외환은행전무의 지적이다.
자본자유화를 맞이할 수 있는 시장의 정비가 시급하다지만 그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당연하면서도 흔히 간과되기 쉬운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올 1월 동서증권이 국내에서는 최초로 「주식ㆍ채권ㆍ외환 등의 거래에 필요한 정보 및 통신시스팀을 유기적으로 결합,일정장소에 집중시킨 종합 증권매매 시스팀이라는 트레이딩센터를 열었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증권사는 이를테면 소매금융이 아닌 도매금융을 해야하는 장삽니다.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는 지점을 열고,안열고 하는 일등에 좌우되니 자본자유화를 해도 별 문제가 안되지만 법인이나 기관을 상대로하는 장사는 첨단시설과 소수의 전문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국내 증권사들이 다들 당장의 일반투자자 상대의 장사에만 신경을 쓰는것 같은데 이래가지고는 외국증권사들과 겨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의 이같은 지적은 자본자유화를 앞둔 우리의 현실을 뼈아프게 꼬집고 있다.
『최근의 주가 폭락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증권사 스스로의 책임이 그중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대규모증자로 증시자금을 긁어가면서 증시의 수급균형을 깨는데 앞장서면서도 이 돈으로 자본자유화나 국제화에 대비한 시장구축ㆍ전문인력양성등은 하지 않고 지방 구석구석까지 지점건물이나 사모아오던 일이 적잖았습니다.』
모 증권사 사장의 「자성론」이다. 쉽게 말해 약정고 경쟁이나 부동산 투자에만 정신이 팔려있다가 자본자유화 이야기만 나오면 안된다고 죽는 소리를 하는 것이 우리업계의 현주소라는 이야기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본자유화는 우리가 발전적으로 대응하며 거쳐가야만할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일본도 84년부터 부분적인 달러화의 엔화전환을 허용할 때 「제2의 흑선」이다 뭐다하며 걱정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결국 자본자유화의 폭을 계속 넓혀 가고 있습니다. 자본자유화의 부정적 측면,예컨대 금리나 환율 교란,국내기업의 경영권 침해 가능성등 때문에 자본자유화를 못한다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일들은 자본자유화의 폭과 속도를 조정하며 해결해가야할 과제들이고,자본자유화가 가져다 줄 긍정적인 면들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한 고위 정부 당국자의 이같은 지적은 그렇다고 자본자유화를 무리하게 밀어 붙이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자본자유화를 어느정도 추진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더 많이 얻어내느냐하는 것은 결국 우리손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한신경제연구소는 최근 한 연구보고서에서 자본자유화의 긍정적인 효과로 ▲금리나 환율이 가격변수 다워지는 일을 촉진시키며 ▲더싼 자금조달ㆍ해외투자의 기회확대ㆍ장래 수익성 위주로의 기업평가기준 변화등으로 인해 기업체질이 개선되며 ▲선진금융기법의 도입으로 자본시장 특히 채권시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등을 들었다.
이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실현시키느냐 못시키느냐하는 것은 자본자유화의 폭과 속도에 달렸다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자본자유화에 대비해나가느냐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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