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이여, 침묵하지 말라" 시인 정현종의 북한 핵 분노와 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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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67.사진)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시력(詩歷) 40년이 넘도록 순수시만 고집했다. 그랬던 시인이 북한의 핵실험을 맹렬히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시인은 A4 용지 세 장에 눌러 쓴, 1연 57행 분량의 친필 원고를 본지에 건네며 "워낙 충격적이고 심각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평소 시풍과 달리 직설적 언어를 내지른 작품에서 시인의 근심과 분노를 읽는다. 시인은 시에서 북한 체제를 '7천만의 삶의 터전을/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는/집단'이라 부르며 '그대들의 목적이 무엇이건/그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17일 늦은 오후 서울 동부이촌동 작업실에서 시인을 만났다. 생각보다도 표정이 어두웠다. 작품 설명을 부탁했지만 "시에 다 들어있다"고 답했다. 시인은 시로써 발언한다는 오랜 신념의 발로이리라. 일문일답을 옮긴다.

-어떤 생각으로 썼나.

"한 나라에 위기가 찾아오면 글쟁이에겐 그 위기에 대해 말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큰일이 벌어졌다는 발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지금,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절로 쓰게 됐다. 시란 이런 것이다. 절실하면 터져나오는 것이다. 앞 부분 대여섯 행에서 몇몇 표현만 다듬었다."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1970~80년대에도 선생은 문학적 관점을 견지한 바 있다. 사회를 향해 발언하기도 했지만 이처럼 직설적이진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현종의 시'와 이번 작품은 무척 다르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직설적이다. 때로는 비유나 수사(修辭)가 거추장스러운 문학도 있다. 나는 이번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북한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북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조금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다면 북한의 권력집단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는 권력집단에 대해 말하지 않는 글쟁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북한과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게 제일 좋다. 이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한국엔 북한 핵실험을 비판하지 않는 집단도 있다.

"일부 좌파 집단의 행동에 대해선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아니, 세상의 어느 좌파가 핵을 찬성할 수 있느냐. 지상의 모든 핵은 폐기돼야 마땅한 것 아니냐. 북한의 잘못에 대해 아무 말도 않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미 다 보도된 것이긴 하지만 정치인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핵실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라에 큰일이 터졌는데 대통령의 얼굴에서 미소 비슷한 게 보였다. 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너무 진지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한국 작가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저절로 민감해지는 게 작가다.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라면 문학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발언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후배 문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발언하라는 것이다. 글쟁이가 침묵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번 작품을 놓고 문단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말이 많을 것 같다.

"반응 같은 건 모르겠다. 쓰고 싶어 썼을 뿐이다. 오해의 소지는 물론 없으리라 본다. 우리가 느끼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면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이 느낄 것이다."

시인의 책상 위엔 미완성 원고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2006년 여름 서울-큰 정치지도자를 고대하며'였다. 어떤 작품이냐고 묻자 "우리 정치인을 비판하는 시"라고 답했다. 미완성 작품이라 당장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귀먹어 기막히고/눈 멀어 암담한'이란 구절은 읽어줬다. "'이런 지도자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란 시가 될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 정현종 시인=1939년 서울 출생. 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82년부터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고 지난해 2월 정년퇴임했다. 2001년 제1회 미당문학상을 비롯해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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