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 부과·통화지표 전환 싸고 신경전|은행-제2금융권 영역다툼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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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은행과 단자·투자신탁 등 제2금융권간에 서로 많은 돈을 예금으로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제2금융권에 대한 지급준비금(지준)제도의 도입, 금리문제 등을 놓고 1, 2금융권간에 신경전이 벌어진 것도 이 문제가 「돈 장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 앞으로 자본 자유화와 함께 외국 금융기관까지 밀려들어오면 한푼이라도 고객의 예금을 더 확보하려는 수신경쟁이 격화 될 수밖에 없다.
현재 1,2금융권은 물론 한은과 재무부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지준 및 중심통화지표 변경에 대한 양측의 입장과 미국·일본·서독 등 선진국의 금융 및 지준 제도 등을 알아본다.
지급준비금이란 금융기관이 받은 고객예금 중의 일정비율을 고객보호를 위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제도다.
제2금융권이 한은의 지준 도입 주장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것도 이자를 한푼도 못 받는 지급준비금을 한은에 예치할 경우 그만큼 대출에 돌릴 수 있는 돈이 줄어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측은 반면에 제2금융권의 여·수신금리가 현재 은행보다 평균 2∼3%이상 높아 은행이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지적, 단자회사의 실적배당상품인 CMA(어음관리구좌)등과 비슷한 성격의 금융상품을 은행에서 취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이 양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것은 금리가 자유화된 선진국과는 달리 금융기관이 정부의 금리규제를 받고 있는 데다 1, 2금융권의 개념이 외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CMA(어음관리구좌)의 도입으로 수신 비중이 부쩍 커진 단자 사는 외국의 금융제도에는 없는 금융기관으로 한국만의 독특한 금융환경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만큼 단자 등 제2금융권에 대한 지준 부과는 한국의 금융환경을 고려해 앞으로 신중히 검토돼야 할 문제다.

<재무부-한은 맞서>
▲한국=현재 현금 및 은행요구 불 예금, 은행의 저축성예금, 거주자외화예금을 포함시킨 총통화(M₂)를 중심통화지표로 쓰고 있는데 여기에다 양도성예금증서(CD)와 CMA등 비 은행금융기관의 단기성금융자산을 포함시킨 단기유동성(M₂B)을 지표로 쓰자는 게 한은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M₂B에 포함되는 모든 금융상품에 지준을 부과하게 되고 그만큼 제2금융권의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
한은은 효율적인 통화관리를 위해 중심통화지표의 변경과 지준 도입을 추진중이고 은행들도 제2금융권과의「공정한 경쟁」을 위해 이제도의 도임을 찬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무부는 M₂B지표의 불안정성, 제2금융권이 신용창조를 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은과 은행권이 제2금융권에 대한 지준 부과 및 통화지표의 전환을 들고 나오게 된 것은 35대65의 수신비중이 나타내듯 제2금융권, 특히 단자의 비중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자사의 역할이 커진 것은 정부가 사채양성화 및 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정책적으로 단자를 육성해 온 결과다. 단자 사는 현재 32개 사가 영업중이다.

<67년 금리자유화>
▲서독=서독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예금 및 대출업무뿐만 아니라 투자와 증권업무를 포함한 모든 금융업무를 수행하는 겸영 은행의 성격을 갖고 있다.
또 67년 이전에는 연방신용조직 감독 국이 연방은행과 합의해 결정하는 금융기관의 최고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규제를 받았으나 67년 4월「이자령」이 폐지되고 금리자유화 조치가 단행됨으로써 금융기관의 모든 금리가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금리」를 둘러싼 로비가 벌어지는 일은 없다.
지준은 48년 지급 준비제도를 도입하면서 상업은행·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 등을 포함했으며 83년 건축대부조합·저당은행까지 확대했다. 지준 대상 금융상품은 요구 불 예금·정기예금·저축예금·4년 미만 만기금융채 등이다.

<한은 논리 뒷받침>
▲미국=비 은행금융 기관도 신용창조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지급준비대상 기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대두한 것이다.
한은의 제2금융권에 대한 지준 부과의 논리적 근거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50년대에 걸리(J Gurley), 쇼(E Shaw)등 이 비 은행금융 기관은 일반의 저축자금을 투자자에게 매개해 주는 단순중개기관에 불과하므로 은행과는 달리 신용창조 기능이 없다는 통화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른바「신 통화이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의 주장은 비 은행금융 기관도 예금과 대체 성이 높은 간접증권을 발행할 수 있고 증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 기업에 빌려주기 때문에 신용창조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비 은행금융 기관의 신용창조 기능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가 70년대 들어 금융자유화 및 금융혁신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이에 따라 상업은행과 비 은행금융 기관간의 업무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비 은행금융 기관도 신용창조 기능을 수행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에 따라 80년 예금금융기관 규제철폐 및 통화관리법이 제정되고 연준의 지급준비대상 기관도 모든 상업은행과 상호저축은행·저축대부조합·신용조합 등으로 확대됐다.


▲일본=일본의 금융기관제도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비교적 많다.
일본에도 단자회사가 있지만 한국의 단자회사와는 달리 ▲콜자금의 중개 ▲금융기관간의 어음, 양도성예금증서, 외국환의 매매중개 등 단기금융 시장에서의 전문적인 거래중개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금융기관조직을 보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있고 민간금융기관은 예금취급기관과 기타기관으로 분류된다.
예금취급 기관으로는 상업은행·신탁은행·신용금고·신용조합·농업 및 어업협동조합 등이 있다. 기타기관은 증권투자신탁·생명보험·증권·단자회사 등이다.
일본은 지급 준비제도가 시행된 지난 59년에는 대상기관이 도시은행·지방은행·외국은행지점·장기신용은행 등 은행금융기관에만 한정돼 있었으나 63년에 일정규모 이상의 상호은행과 신용금고·농림중앙금고가 지급준비대상으로 추가됐다.
이어 72년 5월 일본경제의 국제화와 함께 금융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금전신탁·거주자외화예금·잠기신용은행 및 외국환전문은행의 금융채 등이 지급준비 대상에 추가됐으며 79년4월 양도성예금증서도 그 대상에 포함됐다.
결국 이 같은 외국사례로 볼 때 지준 대상이 점차 제2금융권으로 확대돼 가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2금융권에 대한 지준의 도입과 통화지표의 전환 등은 한국의 금융환경이 다른 나라와 다른 만큼 충분한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고 앞으로 자본자유화 및 금융산업의 구조개편과 맞물러 격론이 예상되고 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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