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서면 안전보장' 수용검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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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밝힌 '서면 안전보장(불가침)'에 대해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의 새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북한이 핵 개발 명분으로 삼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해소 방식으로 내건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입장에서 물러나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뜻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처음으로, 중대한 상황 변화로 볼 수 있다. 북.미 양측이 지난해 10월 핵문제가 불거진 이래 핵심 쟁점인 대북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해 이처럼 간극을 좁힌 적은 없었다. 6자회담 차기 회담 개최에 파란불이 켜졌고, 회담이 열리면 북핵 문제 해결의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 방식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부시 대통령이 이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미국의 최고위급에서 서면 안전보장에 관한 공식 언급을 하고, 이것이 한.미 정상회담 발표문에 들어간 데 대해 상당한 신뢰를 부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까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고, 북한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서면 안전보장을 언급할 때는 "불가침 조약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맞받아쳐 왔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는 북.미 불가침조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미국한테 얻어낼 만큼 얻어냈다는 판단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한.미.일.중.러 5개국 정상이 연쇄 회담을 하고 미국의 안전보장 방식을 평가하면서 6자회담 조기 개최를 촉구한 것을 북한이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이 북한.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고, 농축 우라늄 개발 계획을 중지키로 한 것도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온 요인일 수도 있다.

북한의 방향 전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40여일 만에 공개활동에 나서고,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방북 발표 이후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내부적으로 핵 문제와 관련한 입장 정리가 끝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핵 문제와 관련한 북.미 간 입장차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닌 만큼 앞으로 줄다리기도 예상된다. 북한은 핵 폐기와 안전보장 등이 북.미 양자 간에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 폐기가 전제돼야 안전보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자 안전보장보다 북.미 간 안전보장을 선호하는 것도 변수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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