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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포기 리비아 '전자민주주의' 구축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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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핵 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걷고 있는 리비아가 이번엔 자국의 모든 취학 연령 어린이에게 대당 100달러(약 9만6000원)짜리 교육용 노트북 컴퓨터를 보급하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도 오랫동안 적국이었다가 핵을 포기한 뒤 국교를 회복한 미국의 민간단체 '모든 어린이에게 노트북을(OLPC.One Laptop Per Child)'과 손을 잡았다. OLPC는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싼값에 노트북 컴퓨터를 보급, 선.후진국 간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된 비영리 재단이다.

리비아 정부는 10일 OLPC와 내년 6월까지 120만 대의 저가 노트북 컴퓨터를 공급받는 계약을 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와 함께 리비아는 학교당 서버 1대, 위성인터넷서비스와 정보통신 기반시설도 제공받는다. 리비아 정부는 이 계획 추진에 2억5000만 달러를 들일 계획이다.

신문은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OLPC 회장이 8월 리비아 국가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사진)와 만나 사전 협의를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이 자리에서 리비아가 차드.니제르.르완다와 같은 다른 아프리카 빈국의 어린이들에게도 노트북 컴퓨터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네그로폰테는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리비아는 모든 취학 연령 어린이가 교육용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며 "미국.싱가포르도 그 단계에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했다.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미 MIT대 미디어랩을 설립하기도 한 네그로폰테는 올해 초 MIT대 교수직을 떠나 현재는 OLPC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리비아의 노트북 보급 계획은 카다피의 아들인 사이프 알이슬람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모든 시민이 정부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전자 민주주의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사이프 알이슬람의 최종 목표"라고 전했다.

100달러짜리 노트북 컴퓨터는 비용 절감을 위해 냉각 팬 등을 제거하고 하드 디스크 대신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한다. 또 유료인 윈도 대신 무료 소프트웨어인 리눅스를 운영체제로 선택했다. 무선접속도 가능하며 8시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가 제공된다. 이 밖에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악천후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외장을 먼지와 물에 강하게 제작하는 것도 특징이다. OLPC는 다음달 중 시제품을 선보인 뒤 내년 중반께 대만 업체에 양산을 맡길 계획이다.

구글.이베이 등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OLPC는 아르헨티나.브라질.나이지리아.태국과 시험 구매 계약을 했다.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단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는 올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값싼 노트북 공급보다 컴퓨터 기능을 내장한 차세대 휴대전화 개발과 보급이 정보 격차를 줄이는 더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선하 기자

◆ 리비아식 핵 해법

2003년부터 핵시설 자진 해체…서방과 관계 개선

리비아는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 이후 강경 반미 노선을 표방했으며, 핵 개발도 추진해 왔다. 카다피의 리비아는 미국을 겨냥한 각종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79년에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주재 미 대사관이 시위대에 불탔다. 미국은 이듬해인 80년 리비아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으며 86년부터는 경제 제재에 들어갔다. 리비아는 86년 미군 병사들이 많이 출입하는 독일 베를린의 디스코클럽 테러와 88년 미 팬암기 폭파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미국과 최악의 관계로 치달았다. 미국은 81년과 86년 두 차례에 걸쳐 리비아를 보복 폭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비아는 2003년 12월 전격적으로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포기를 선언한 뒤 서방과의 관계를 다시 복원하기 시작했다. 핵 관련 시설을 자진 해체해 미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2004년 2월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개설했다. 올 6월에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으며 트리폴리에 미 대사관을 다시 개설, 26년 만에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기에 이르렀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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