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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예산 짤 때도 性 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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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얼마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의 한 장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지은희(池銀姬)여성부 장관에게 물었다.

"'성 인지적(gender sensitive) 예산'이란 말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池장관이 열심히 설명했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국무위원들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말은 여성부와 국회 여성위원회, 그리고 여성단체들 사이에서 최근 부쩍 많이 사용되는 말 중의 하나다. 성인지적 예산이란 예산이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고 각각의 요구를 잘 수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고 쓸 돈을 책정하는 것. 실제로 2005년도 예산부터는 성 인지적 예산편성 지침에 따라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예산도 남녀를 따져야 한다고?= 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 전화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요즘 예산을 '성 인지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예산을 짜고 집행하는데도 굳이 남녀를 따져야 할까?

한국여성민우회 윤정숙 대표는 "외형상 예산은 성별에 상관없이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흔히 많이 드는 예가 화장실 건립이다. 건물에서 남녀 화장실의 개수가 같다면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화장실 이용 시간이 남자보다 길기 때문이다.

직업 훈련에 투입되는 예산도 성 인지적 관점에서 새로 짜야 할 분야다. 통상 직업훈련의 대상자와 직종은 남성 중심적으로 편성돼 있다. 하지만 여성가장.독신여성 등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여성에 대한 직업훈련 예산이 대폭 증액돼야 한다는 것. 여성노인의 수가 남성노인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안하면 노인복지 예산도 성별로 나누어 집행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1% 미만인 여성 관련 예산=성 인지적 관점에서 예산은 ▶성 특정적 예산▶성 평등적 예산▶ 일반예산 등 세 범주로 나누어 분석된다.

여성부에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영옥 정책보좌관은 "성 특정적 예산은 여성이나 남성의 특정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출"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여성의 출산휴가시 임금지급, 남성을 위한 가정폭력상담 등이 해당된다.

성 평등 예산은 양성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한 예산이다. 유급 육아휴직이나 남녀 평등의식 확산을 위한 캠페인 비용 등이 포함된다. 성 인지적 범주로 분석한 결과 2001년 여성부를 포함해 과학기술부 등 6개 부처의 성 특정 예산과 성 평등 예산은 총 2천6백44억원이었다. 전체 일반회계 예산의 0.28%에 불과하다.

성 인지적 예산 편성은 1980년대 호주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뒤 95년 베이징(北京)여성대회에서 행동강령으로 채택됐다. 전 세계 40여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2년 11월 국회 여성위원회가 '성 인지적 예산편성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 예산편성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2005년도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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