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석재의천문학이야기

북한 핵실험과 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핵융합과 핵분열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핵분열은, 효과적으로 분열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원료를 구하기가 힘든 단점이 있는 반면 원자로를 제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핵분열은 이미 실용화돼 핵발전소, 재래식 원자 폭탄 제조, 북한의 핵실험 등에 이용되고 있다.

핵융합은 원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주위 온도가 대략 섭씨 1000만 도에 도달해야만 시작된다는 단점이 있다. 핵융합 발전을 시도해도 원자로의 온도를 올리는 데 더욱 많은 비용이 들어, 즉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핵분열(nuclear fission)과 핵융합(nuclear fusion)은 영어로도 비슷해 자주 틀리게 인용되는데 확신이 없으면 핵반응(nuclear reaction)이라 하면 된다. 수소→헬륨 핵융합은 개량된 원자 폭탄, 즉 수소 폭탄을 제조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수소 폭탄은 재래식 원자 폭탄이 중심에서 먼저 폭발해 고온을 얻은 뒤 주위를 둘러싼 수소가 헬륨으로 핵융합하게 만들어진다.

별들은 수소→헬륨 핵융합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다. 거의 수소로 만들어진 우리 해는 중심 온도가 섭씨 1000만 도보다 높은 별이기 때문에 수소→헬륨 핵융합 에너지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이 거의 수소로 만들어진 목성이 해처럼 빛나지 못하는 것은 중심 온도가 섭씨 1000만 도보다 낮기 때문이다.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까 수소→헬륨 핵융합의 원료는 지구상 모든 바닷물인 셈이다. 그래서 핵융합을 '꿈의 에너지' '미래 에너지'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핵융합연구센터가 주축이 돼 미래 에너지 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핵실험과 밤하늘의 별은 나름대로 상관이 있다. 흘러간 팝송 'The End of the World'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아 이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에 질문이 참 많이 나오는데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는 그중 일부다. 해는 별이기 때문에 이 둘은 사실 같은 질문이고 그 정답은 핵융합이다.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다 보니 천체물리학의 정곡을 묻게 된 것이다. 더구나 그 답이 수소 폭탄 제조 원리라니! 기초과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 해보다 더 무거운 별 중에는 중심 온도가 섭씨 1억 도를 넘는 것도 많다. 이 경우 인류가 꿈도 꿔 보지 못한 헬륨→탄소 핵융합이 시작된다. 즉 별은 이미 '헬륨 폭탄'을 제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이르다. 질량이 아주 큰 별의 중심에서는 '탄소 폭탄' '네온 폭탄' 같은 것도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별의 핵융합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탄소.질소.산소 같은 원소는 모두 별의 핵융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별들이 종말 단계에서 폭발해 이런 원소들을 우주에 뿌리고 거기서 다시 태어나는 행성은 유기물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핵융합이라는 우주의 섭리를 연구해 기껏 서로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인류는 정말 어리석은 존재다. 거대한 우주를 관측해 배운 최고의 지식을 고작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다니….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