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없는 변신…마법에 걸린 뮤지컬 '공주' 김선경

중앙일보

입력

▶ '로마의 휴일'의 깜찍한 공주.

대화 중 웃음을 참느라고 혼났다.

그의 얼굴에서 근래 본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의 로버트 앤 수녀 모습이 떠올라 참기 어려웠다. 그 작품에서 김선경 씨는 코미디언보다 더 자연스럽게 코믹 연기를 소화해냈고,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성공했다.

그는 오는 11월15일 LG아트센터에서 시작하는 브로드웨이의 대표적 뮤지컬 <킹 앤 아이>(1951년 초연)에선 김석훈(킹 역)과 만나 왕실 가정 교사이자 억센 여자 애나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초연인 화제작 <킹 앤 아이>는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제가로, 또는 율 브리너가 브로드웨이에서 30년 이상 킹 역을 맡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기의 로맨스'.'쉘 위 댄스' 뮤지컬 넘버에 맞춰 왕에게 춤을 가르치는 김선경 씨의 연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사실 그는 우아한 이미지를 가진 연기자이다. 한 마디로 '공주과'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아드리아나였을 땐 남편만 바라보고 헌신하는 청순가련형의 여인으로,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였을 땐 깜찍한 철부지 여인으로 나왔다.

그는 CF나 영화로도 알려져 있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카라 CF의 전속 모델 등 다수의 CF에서 깊이 있는 미소를 선보였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선 차승원의 마누라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30대 중반 미혼의 김선경 씨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진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인간 김선경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만들어 봤으니 한 번 보시라.

옛날 옛적에 선경 공주가 살았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아이였지요.

어느 날 선경 공주의 미모를 시기한 숲 속의 마녀가 마법을 걸었습니다. 화려한 미모를 사람들 앞에 자랑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 어렵도록 하는. 그래서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고통을 주었답니다.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이 모질게 변할 정도로 어려움을 부여하기로 했지요. 단, 마법을 풀어줄 왕자를 만나고 못 만나고는 먼 훗날 그의 운명에 맡겨 놓기로 했습니다.

▶ ‘넌센스 잼보리’의 웃기는 수녀.

공주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 해 사람들을 기쁘게 했답니다. 공주는 종교음악을 공부하러 대학교(총신대)에 갔고 '수녀'란 별명을 얻었답니다. 마법 탓인지 남자들 앞에서 많이 움츠렸지요.

하지만 공주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 어디 가겠습니까. 노래, 춤, 연기를 하는 한 뮤지컬 극단에 발탁돼 남들을 즐겁게 하는 뮤지컬 배우가 되었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1991년), <드라큘라>의 아드리아나, <라이프>의 퀸, <미녀와 야수>의 미녀, <로마의 휴일>의 앤공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 등 무대 위에서도 공주로 말이지요.

마녀의 예언은 무서웠습니다. 뮤지컬 배우 생활을 시작했을 때 공주는 여리기만 했지요. '사슴'이란 별명이 그걸 말해주지 않습니까. 사람들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연습실 한 쪽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연습하고. 누가 야단이라도 치면 눈물이 글썽해지고. 사회는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고 항상 고난을 피하기만 했던 공주는 결심했습니다. 누구 하나 자신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사람은 없으니 스스로 단단해지기로.

약 6년 전부터 공주는 단단해졌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별명이 '김다르크'랍니다. 성격이 너무 솔직하고 시원해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고 따지는 적극적인 여자지요. 제작자가 싫어하는 배우일지도 모릅니다만.

무대 위에서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해 코믹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에서 로버트 앤 수녀로 나와 관객 배꼽을 잡았지요. 주먹질하고 발로 차는 망가진 수녀가 예전에 알던 그 우아한 공주 맞냐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공주는 코믹 연기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습니다. <개그 콘서트> 등 코미디를 보고 춤이나 유행어를 밤새 연습해 다음날 <넌센스 잼보리>에 써먹었던 것이지요. 반응이 좋으면 무대에 자주 올려 자기 걸로 만들었답니다.

새 뮤지컬 <킹 앤 아이>에선 또 변신을 합니다. 태국 샴 왕에게 절대 지지 않는 강한 여성인 왕실 가정교사 애나로 말이지요. 대쪽 같은 고집에 지적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이지요. 공주는 공연을 앞두고 밤잠을 설칩니다. 자신이 애나라면 왕에게 어떻게 했을까라고 상상을 하느라 말입니다. 모두가 잘 아는 정통극이라 어느 때보다 부담을 크게 느낍니다.

공주는 때로 단단해진 자신이 싫습니다. 그 옛날처럼 다시 물러지고 싶어합니다. 이제는 왕자를 기다립니다. 왕자가 공주의 단단한 부분을 깨부수고 예전의 소녀 같은 모습으로 돌려놓기를 바라며. 그땐 마녀의 마법도 자연적으로 풀리겠죠. 선경 공주의 동화는 앞으로 얼마나 남아 있을까 궁금합니다.

일간스포츠 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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