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민족동질성 추구 문화-예술계에 남긴 6·25의 자국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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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음악가들은 6·25를 반영하는 작품에 대한 관심을 다른 예술 분야에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가진다. 왜 그럴까. 예술은 진공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학적 토양에서 태어나는 것이 틀림없는데 유독 음악만이 우리 민족사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6·25를 무슨 이유로 외면하고 있을까.
음악은 다른 예술과 성격이 다르다. 음악이 사회를 반영하는 방식 역시 다르다. 음악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이 개입되고 있는 「성악」을 뜻하는가. 벙어리들의 수화같은 순수 음향현상으로 되어있는 「기악」을 뜻하는가.
음악이 할 일과 문학이 할 일은 같은 것일 수 없다. 소리가 말의 수단이 되는 경우의 성악은 성공할 수 없다. 성악이든 기악이든간에 음악가에게는 말보다 소리가 더 중요하다. 음악가들이 순수음향현상인 소리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리로서도 충분히 소통이 되고, 소리만을 소통수단으로 삼아도 더할나위 없는 훌륭한 소통내용을 음악은 가진다. 음악의 속성이 그러하다. 이러한 속성과 상종하고있는 음악가들은 자연적으로 말의 개념과 더 깊은 연관이 있게 마련인 6·25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음악 분야에서 중요한 장르가 오페라다. 오페라는 말과 소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소통내용을 형성해나가는 예술이다. 음악에서 6·25를 반영하는 작품을 낸다면 「2중 반영」을 통해야한다는 기악 쪽보다 오페라 쪽이 더 편할지 모른다. 물론 소리를 말의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오페라는 성공할 수 없다.
인간이 오페라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소리보다 사실에 있어서는 말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음악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말을 해야 산다.
소리를 통해 소통하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지만 말로 소통하는 범위는 인간의 경우 예외가 없다.
한국말이 한국인 모두에게 관여되듯이 6·25가 한국인 전체의 삶을 간섭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음악가 역시 말을 사용하고, 음악가의 삶역시 6·25에 의해서 간섭받은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그렇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말과 소리의 조화를 얻는 6·25관련 음악작품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6·25와 관련된 군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가를 음악과 등식관계에 놓을 수는 없다.
최근의 몇몇 시도들(6·25 40주년 음악제에서 연주된 김정길작곡의 서곡 『6·25 40주년에 부쳐』, 최창권편곡의 조곡 『아아 40년』, 백병동 작곡·박화목 작시의 교성곡 『육이오』)이 밑거름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강숙 <서울대 교수·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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