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가 罪 … 盧자금도 조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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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李會昌)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측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돈웅 의원 사건과 관련해 말을 아끼던 李전후보의 직계들이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나선 데다 그들의 발길도 서울 옥인동(李전후보 자택)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李전총재의 핵심 측근인 하순봉(河舜鳳)의원은 "당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며 "당 지도부가 정정당당하게 대처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崔의원 사건에 대한 수사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선거 후엔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을 위로하는 게 상례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이 패한 이회창 후보의 선거자금을 뒷조사했고, 이번 SK 1백억원도 그런 맥락에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河의원은 "야당이 된 게 죄이지만 법은 공평해야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그는 崔의원에 대해선 옹호했다. "선거 땐 당직을 맡으면 기업인이나 여러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하루에 2천만원이 필요한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나. 선거 때 쓴 돈의 전체 규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河의원은 며칠 전 李전후보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의 의총 발언엔 李전후보의 의중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崔의원이 당 지도부에 섭섭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만큼 李전후보도 최병렬 대표 등에게 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낸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李전후보에겐 지난 23일 신경식(辛卿植)의원이 다녀갔다. 24일엔 李전후보가 김기배(金杞培)의원을 전화로 찾았다고 한다.

辛.金의원 역시 李전후보의 핵심 측근이다. 그런 두 사람이 李전후보와 나눈 얘기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주변에선 "李전후보가 崔의원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특히 청와대에서 여야 대선자금 자진 공개 후 사면이란 해법을 검토 중이고, 한나라당에서도 그것을 긍정 검토하는 분위기가 있는 만큼 李전후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李전후보 측에서는 청와대와의 정치적 타결 방안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우리 측이 비굴하게 타협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청와대의 의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그래서 李전후보와 崔대표의 만남이 주목된다.

崔대표는 "25일 李전후보 차남 결혼식에 가면 피차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일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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