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앞장선 시민ㆍ지식인운동(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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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사회란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실천적 의지에 의해 점진적으로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를 현실적으로 입증하는 최근 몇몇 사회단체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좋은 모범으로서 크게 평가할 일이다.
어떤 단체들은 폭력적 과격시위에 맞서 비폭력ㆍ대안있는 현실비판을 내세우고 있고,어떤 단체들은 이 사회 속에 만연한 과소비 풍조를 개탄하며 부유층의 자제와 근검절약의 생활화를 외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또 어떤 모임들은 정부정책의 잘잘못을 가려내고 올바른 방향제시를 하는 지식인들의 능동적 현실참여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압제와 권위의 체제에 대항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투쟁했던 80년대까지의 반체제운동이 현실 속의 개혁참여라는 형태로 탈바꿈하는 민주화 속의 새로운 시민운동이다.
권위주의 시절에 만연했던 제로섬 형식의 혁명투쟁이 아니라 그 운동의 방향과 자세가 점진적이고 개혁적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또 이들 단체들의 주장과 표현양식이 폭력을 배제하고 비판적 이성과 민주적 시민 질서를 존중하는 까닭에 이들의 주장은 객관성을 높이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22일 서울대 교수 1백20여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가진 서울대 「사회정의연구 실천모임」은 이 사회를 대표하는 맑은 지성들의 바뀌어진 현실참여라는 관점에서 크게 환영하고 그 모임의 추이에 주목코자 한다.
「사회의 실천적 과제에 대한 탐구와 발언」을 통해 민주사회건설과 민족통일에 기여하겠다는 이들의 창립선언문은 젊은 지성들의 새로운 자기혁신이고 청신한 학문풍토의 진작을 예고하는 새로운 바람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냉소적 허무주의나 전면 거부로 일관하는 권위주의 체제하의 현실도피적 지식인이 아니라 정책을 개발하고 연구하면서 비판과 개혁을 동시에 선도하는 자율적 「싱크 탱크」로 기능할 것을 자청한 지식인들의 단합된 새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는 이와 비슷한 성격을 띤 시민운동 모임인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의 활동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민주화의 진통과 갈등의 막바지에서 이들은 폭력시위 보다는 비폭력의 이성에 찬 개혁 목소리를 내었고,공허한 이념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현실속의 현안을 연구하고 비판하면서 개혁의 대안을 제시해 왔다.
1년남짓의 활동속에서 회원 숫자가 5천명에 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모임의 공감도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제각기 일터와 가정에서 자신들의 소임을 다한 다음 다시 한자리에 모여 사회를 걱정하고 나라의 장래에 대해 작은 생각이나마 보태겠다는 시민의 숫자가 이만큼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민주역량의 성숙도를 입증해 준다.
지난 19일 10개 민간소비자단체의 연합기구인 소비자 보호단체협의회가 발표한 『미국 무역대표부 망발을 반박한다』는 성명문 또한 일찍이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단합된 시민운동의 한 표현이기도 했다.
경제난국의 주범을 일부 계층의 과소비풍조와 향락ㆍ투기로 본 이 단체들은 근검절약운동이야말로 이 난국을 푸는 열쇠라고 보고 대대적 캠페인을 벌였다. 이런 건전소비생활운동을 「수입규제를 위해 정부가 배후조종」했다는 미국측에 강력한 반발과 반박을 한 것이 소보협의 성명모임이었다.
상류층의 과소비 풍조를 규탄하고 나눔과 도움의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때로는 강대국의 개방압력에까지 대항할 수 있는 시민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모임 또한 정부가 대신할 수 없는 시민운동 고유의 영역인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모임들만이 이 사회의 민주역량을 키우고 주도하는 세력의 전부란게 아니다.
그와 유사한 모임과 단체들이 남이 모르게 조용하고도 줄기차게 사회 구석구석마다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우리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민주주의,민주사회란 몇몇 정치가의 웅변과 수완에 의해 이뤄지는게 아니다. 이 사회 이 나라를 끌고가는 시민 한사람마다의 민주적 의지와 실천에 의해 서서히,그리고 확고하게 다져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민주적 의지와 실천이 여럿의 모임과 단체로 단합되고 확산될 때 민주사회로 가는 길은 넓고도 탄탄하게 열리는 것이다.
이들 모임과 단체들이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그 모임에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정신을 발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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