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교육자치 독립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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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교육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판교 학원단지에서 강북 뉴타운으로 오더니,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와 통합시키자는 재정경제부 안에 교육인적자원부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어느 정도 자치를 염두에 둔 것인지, 어느 정도 평준화를 포기한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이제껏 논의됐던 교육개혁 방안 중 가장 전진적인 발상으로 환영할 만하다.

평준화는 실패했다. 지역.계층 간 교육기회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고, 학력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래도 온 국민이 마술에 걸려 있기나 한 듯 평준화를 포기하지 못한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니 정치인도 표 떨어질 일을 스스로 할 리 없다. 그래서 교육개혁은 표류하는 것이다.

*** 지방자치에 편입하려는 발상

될 만한 말이 나온 김에 필자가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마디 거드는 것은 교육문제를 교육문제로만 보지 않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국의 공교육 제도를 장기간 관찰하면서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교육 전문가들은 항상 미국의 공교육 제도를 실패 사례로 지목하고 있는데 한국의 학부모는 왜 자녀들을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으로 마구 몰아넣는 것일까.

미국의 공교육은 지역사회가 키우는 교육, 즉 교육자치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미국을 떠받치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도 교육감을 선출하고, 교육위원회도 있으니 교육자치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자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돈 내고 하는 자치를 말한다. 교육(자치)구에서 독자적으로 교육세를 징수하고 그 주민이 교육감을 선출하며, 교육감은 교육시설.교과과정.교사 채용을 책임지는 것이다. 교육감을 평가하는 기준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상급 학교 진학률이다. 그 실적이 저조하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재경부의 개혁안이 자치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이지만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에 편입시키려고 하는 것은 악수다. 자치의 목표와 실적 평가가 아직도 모호한 일반자치와 섞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온 국민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기능적 자치인 교육자치를 독립시키고, 활성화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주민의 자치 역량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게 정도일 것이다. 공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형성되면 우리 학부모의 교육열을 감안할 때 교육재정과 참여는 넘쳐날 것이다.

문제는 지역.계층 간 격차를 어떻게 메우느냐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미 현재 위험한 수준이고 현 체제 아래에서는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완전 교육자치제가 도입되면 중앙정부의 역할은 세수(稅收)로 교육재정이 열악한 지역을 돕는 것으로 좁혀질 것이다. 간접적인 방법도 있다. 여건이 좋은 교육구가 타 교육구를 돕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투자비의 일정 부분을 재정이 열악한 교육구를 위해 공동기금으로 할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야말로 중앙정치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 정부稅收로 열악한 지역 도와야

또 하나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사교육 인프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다. 공교육비에 육박하는 사교육비가 말해 주듯 우리나라의 사교육 체제는 교육의 현실이다. 교과교육뿐 아니라 학생 지도까지 학원에 맡기는 형편이다. 학교 시설 기준. 교원 자격 기준 등에 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교육 시스템을 과감하게 공교육으로 흡수하면 부족한 시설과 인적 자원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예컨대 외국에는 집 한 채로 된 학교, 즉 하우스 스쿨도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행평가.수준별 교육 등을 담아낼 수 없다. 대학들도 이미 다양한 입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양하지 않은데 입시제도만 다양하면 무엇 하나. 출혈하더라도 합리화된 교육 시스템에 투자하는 것이 부동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 낫고, 급박한 청년 실업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 때 했어야 했고, 지금이 두 번째 기회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