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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중남미 영광과 좌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단일경작(Mono Culture)은 농업과 목축·광업자원의 보고인 라틴 아메리카에 진출한 선진국 다국적 기업들이 현지 국민경제와. 국가재정의 목덜미를 움켜쥐고있는 무서운 올가미다.
또 모노 컬처는 산업분야에만이 아니라 문화·사회·권력구조에까지도 깊숙히 침투, 「중심부」 라는 자력권에 빨려드는 「주변부」의 이른바 종속화를 심화시킨다.
농업분야의 경우 모노 컬처는 주생산품을 수출용 특화작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탕수수·코피·바나나·검정콩등으로 단일화시키고 토지 집중화에 의한 경작과 「계약재배」라는 방법을 통해 수급과 외화획득의 굴레를 거머쥔다. 광업의 경우도 물론 각 나라마다 매장된 광믈의 특수성이 있긴하지만 칠레=구리, 볼리비아=주석, 도미니카=금등으로 집중화시켜놓았다.

<인간판계도 파괴>
이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모노 컬처는 「종속의 심화」라는 심각한 문제외에도 지주와 소작농관계의 전통적 반봉건 농업사회에서 유지돼오던 상부상조의 후덕한 인간관계마저 파괴되는 「점진적 비인간화」 현상을 초래하고있다.
중미의 엘살바도르는 D세기부터 상업적 코피재배방식이 도입됐다. 다국적기업의 대농원들이 코피재배를 위해 점차적으로 토지를 매입, 토지 집중화가 이루어지면서 공동 경작자들과 지주들ㅇ게 밭뙈기를 부쳐먹는 소작농들이 모두 쫓겨나고 말았다.
코피·설탕·면화재배의 대농원중심으로 농업구조가 개편되면서 농업노동자로 전락해 굶주림에 지친 삶을 살게되고만 농민들은 『코피가 사람을 먹는다』 는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도미니카에 11만에이커 (약1억3천만평)의 사탕수수농장을 가진 미국의 세계적인 다국적기업 걸프+웨스턴 인더스트리스(G+W)는 도미니카 정부보다 훨씬 더 강한 「국가중의 국가」 다. 뉴욕에 본부를 두고있는 G+W는 67년 도미니카에 진출한후 도마니카 경작지의 9%를 차지한 사우스 푸에르토리코 슈퍼컴퍼니(SPRS)사까지 매입, 가장 비옥한 남동부지역을 차지한 도미니카최대 지주가 됐다.
도미니카 설탕생산의 3분의1을 점유한 G+W는 트루히요정권으로부터 농장이 있는 로마나지역에 20년간 면세연장을 해주는 이권을 얻어낸데 이어 발라게르정부로부터도 여러가지 수지맞는 양보를 얻어냈다.
G+W는 또 자체농장외에도 노조문제나 정치경제상의 위험부담이 없는 클로니아(Colinia·계약재배) 제도를 통해 5만에이커의 토지를 장악했다. 가공과 판매까지 지배하면서 현지 생산품을 계속 통제하고있는 G+W는 가공공장 근처의 농민이 모두 계약재배를 원치 않았지만도미니카 정부의 지원을 받는 조직폭력을 동원, 목숨을 노리는 암살기도등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마침내 국제설탕시장의 급격한 가격 파동보다 콩·과일·쌀등을 재배해 적은 소득을 올리기를 좋아한 농민들은 하는 수없이 계약재배를 해야했고 자기 토지가 없는 무단경작자들은 지주의 재배계약이 끝나자마자 쫓겨나 일시에 전생활양식을 파괴당하고 말았다.
설탕농장화의 최대 희생자인 소작농민들은 자신들의 식량공급원을 상실했고 가부장적인 지주와의 사회적 관계를 갑자기 파괴당한채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주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로 쫓겨난 농민들은 지주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얻어 입던헌옷가지나 지주 토지내의 야생망고·오렌지·땔감등을 얻어다 생계를 유지하던 기반을 잃고 말았다.

<소작농 터전 뺏어>
세뇨르(Senor·일반적으로 남자에 붙이는 스페인어 존칭이지만 지주를 가부장적으로 부를때도 쓰인다)의 명예와 인간됨을 존경해온 농민들와 비애는 지주의 부조를 상실한데에만 그치지 않고 몰인정한 새로운 다국적기업들의 인심에 곧바로 부닥쳤다.
전래의 지주들에게 예속돼있을 때는 가축들이 농장에 잘못 들어가도 『죄송하다』는 사죄한마디로 되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다국적기업 농원과 계약재배 농장에서는 잘못 들어간 가축이 사살되거나 경찰로 넘겨져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만 되찾을수 있다.
도미니카의 사탕수수재배 심장부인 천주교 이구에이교구에서 농민사목을 하고 있는 후안 미구엘 페레스신부는 이같은 지주와 농민의 인간관계 파괴를 「점진적 비인간화」라고 묘사했다.
모노 컬처의 비극은 브라질의 「검정콩 투표」에서도 아주 잘 드러났다. 리오데자네이로의 76년 시의회선거에서 「검정콩」이라고 쓴 투표용지가 20만표나 나왔다.
이는 다국적기업의 대목장과 기업농장이 증가하면서 모노 컬처를 위한 토지집중화 현상을일으켜 주식인 소작농들의 검정콩 생산을 파괴, 결과적으로 식량난을 겪게된 도시유입 빈민촌 아낙네들의 항의였다.

<「검정콩」 투표도>
수출을 강조한 브라질정부가 외화획득 작물이 아닌 재래의 농작물을 강제로 포기시키면서다국적기업 중심의 기업농을 장려하자 76년 검정콩 생산은 실제로 전년보다 17%나 감소했다.
또 하나의 비극적인 예는 역시 브라질 국민들이 세계4위를 자랑하는 목축국임에도 불구하고 우유생산의 감소로 우유부족사태를 맞기 일쑤고 국민의 극소수만이 육류나 브라질정부의보조를 받은 다국적기업 낙농가들이 살고있는 선진공업국들로부터 수입한 분유를 사먹을수 있다는 현실이다.
실제로 브라질 오렌지의 97%가 코카콜라사와 같은 다국적기업들에 수출되는 반면 브라질정부는 미국의 중요 청량음료 제조회사들에 50%의 조세 감면혜택을 줘 인구의 절반이 비타민C 결핍증에 걸려있는 이 나라에서 무영양음료의 판매를 증가시켜주기도 했다.
칠레의 구리광산을 지배하는 미국 다국적기업 아나콘다와 케네코트는 1915∼1968년까지 겨우 3백50만달러를 투자하고 20억달러의, 순이익을 챙겨갔고 55∼70년사이 케네코트는 52·8%, 아나콘다는 21·5%의 엄청난 연평균 이윤을 올렸다는 것이다.
칠레의 동이나 볼리비아 주석등이 뉴욕 금속시장 제시가격을 절대적으로 수락할 수밖에없는 광업분야의 중남미 모노컬처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월남전동안 파운드당 0·12∼0·42달러로 가격을 동결당해 국제가격에 비해 수십억달러를 손해보기도 했다.
미국은 국제주석가격이 높다고 생각한 73년4월 「일반행정조달처」 보유의 주석 19만t을국제시장에 투매, 볼리비아 주석값을 폭락시키기도 했다.
선진공업국들의 다국적기업 이윤을 극대화하기위한 수단의 하나인 중남미 모노 컬처는 자본주의의 도덕성에 대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며 라틴아메리카 산업구조와 문화구조의 왜곡이 아닐수없다.
글 이은윤특집부장 문일현기자
사진 최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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