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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은 지금 변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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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9일 밤 서울 신촌 민자역사 앞. 화려한 불빛과 전광판이 거리를 밝히는 가운데 200여 명의 시민이 역사 앞을 바삐 오가고 있었다. 오후 10시만 되면 정적에 휩싸였던 이 지역은 지난달 22일 밀리오레 쇼핑몰과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대학 문화'를 상징하던 신촌이 변신 중이다. 대학생들이 사회현실을 고민하고 토로하던 사회과학 서점과 '독수리 다방'은 사라진 지 오래며, 통기타와 호프로 대변되던 소박한 주점은 줄어들었고, '학생시위의 메카'라는 명성도 이젠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그 자리엔 신촌 민자역사와 대형 쇼핑몰, 현대식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새로운 '신촌 문화'를 만들고 있다.

◆ 현대식 건물과 문화 공간으로 대체=신촌 변화의 첫 테이프는 민자역사가 끊었다. 지난달 완공된 민자역사에는 밀리오레와 메가박스 영화관이 자리 잡았다. 그 양쪽으론 1800여 평 규모의 문화광장이 조성 중이다.

신촌역 조계옥(30) 부역장은 "신촌역에서 하루 5500여 명이 수색.문산 등지로 가는 경의선(서울역~수색~일산~문산) 열차를 이용하고 있다"며 "쇼핑과 영화.식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용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화여대 앞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인근 500m의 길은 인도를 넓히고 40여 개의 전봇대를 없애 '찾고 싶은 거리'로 단장했다. 자그마한 패션 관련 상점과 먹자골목은 대형 쇼핑몰과 주상복합 건물로 대체되고 있다. 시유지 1000평에는 야외공연장을 갖춘 문화 공원도 생긴다.

이화여대생 김지연(22.여)씨는 "예전처럼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져 아쉽기도 하지만 신세대 대학 문화를 즐길 수 있고 거리 전체도 산뜻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사라지는 신촌 문화에 아쉬움도=신촌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강남.명동 등 도심 유흥가와 차이가 없어져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대학 시절 신촌 열차역을 통해 MT를 다녔다는 회사원 정한성(28)씨는 "싼값에 도시를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맛볼 수 있었던 정감 어린 장소로 의미가 깊었는데 추억으로만 남게 돼 섭섭하다"고 말했다.

1920년 완공돼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옛 신촌 열차역은 민자역사 개장과 더불어 시 지정 문화재가 돼 역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대학 MT 코스로 각광받던 교외선은 2년 전에 끊겼다.

신촌의 대학 문화를 상징하던 인문사회과학 서점 '오늘의 책'을 비롯한 '독수리 다방' '그린하우스' 등도 10여 년 전부터 하나씩 사라져 최근 2 ~ 3년 사이 모두 자취를 감췄다. 오늘의 책을 운영했던 조성식(43)씨는 "한때 인문사회과학 서점 중 전국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자랑했는데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연세대 출신의 한양대 김찬호(문화인류학) 교수는 "90년대 초반부터 신촌에 록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소비문화 위주로 지형이 바뀌었다"며 "사라지는 신촌 문화는 시대 변화의 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권호 기자<gnomo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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