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삶」에 바탕둔 시만이 "생명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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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앙일보 6월11일자(일부지방 12일)「시인 하종오씨 절필」이란 제목의 기사(11면)를 보고 하형의「참괴스러움 속에서」란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젖은 새 한 마리』란 자선시집의 앞머리에 그글이 얌전하게 놓여 있더군요. 글을 읽으며, 또 기사를 다시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참괴스러움 속에서」란 글을 씁니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참괴스럽게 했을까요.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새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고향과 생일은 다르지만 「5월 광주산」이란 말을 감연히 사용하며 이 땅에서 시인이고자 했을 때 원칙적으로 동의한 시인상을 우리는 서로 확인하지 않았던가요. 시인이 올바른 시를 쓰려면 민중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것은 가능하면 존재론적 결단도 필요한 일이라고.
민중들의 처지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살아있는 민중의 생활로 형상화해야한다고. 만약 민중의 삶에서 멀어지면 시는 생경한 구호나 이념의 나열로 떨어져 시인 자신의 견해만 뼈다귀처럼 나열되게 마련이라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을 끊임없는 민중적 전망속에 담금질해야 한다고 소주잔을 비우며 다짐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일은 이러한 다짐이 개인에게 한정시켜 생각할 땐 시를 쓰는 자 개인의 몫이지만 그러한 개인들이 어울려 있을 때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과제로 생각했던 점입니다.
그것은 또한 특정한 개인의 몫으로 해결될 성질의 일만이 아니라 서로간에 동지애적 비판과 격려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굳이 시쓰는 자와 일하는 자를 구분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 삶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건 간에 일하는 자의 삶과 세계관으로 확실하게 정립하자는 생각이 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러한 다짐은 다짐일뿐 실제로 실천되지 못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이즈음은 그러한 반성이 뼈를 아프게 합니다. 서점가에선 대중시라 이름지어진 통속시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또한 70년대 김지하가, 80년대 김남주가 이룩한 시적 성과에 버금가는 성과로 나아갈 새로운 동력은 발견·계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아니 상투화된 정서를 동어반복적으로 반복하는 잘못도 없지 않습니다.
그점에서 하형 스스로 자신의 시에 대해 행한 반성은 곧장 우리 모두의 반성으로 치환되기도 합니다. 그점에서는 옳습니다.
하지만 하형은 우리가 명시적으로 세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약속을 저버린 잘못을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첫째는 그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간에 동지애적 비판과 격려속에서 해결하려 하지않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리고 센세이셔널한 방법을 취해 이탈했습니다. 둘째는 민중 일반과 시인을 정도 이상으로 구분하여 문학주의자의 창백한 골방으로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셋재는 민중일반과 하형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민중 개인을 혼동하였으며 이념과 예술을 구분하지 못하고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라는 낯익은 구호로 후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념과 예술은 범주가 다른 개념이며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이데올로기이며 예술이냐 하는 것을 살피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형은 이제 시인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이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아픕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꼭 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형식과 내용에 맞는 어떤 것을 찾아내 언젠가 돌아오겠지요. 우리가 굳이 시와 범인을 구분하지 않고 있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형의 고난이 깊어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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