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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의 정면도전(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법원에서 증언을 마치고 나오던 고소인이 피고인의 동료에게 살해된 사건은 법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의 신변이 무방비상태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범행은 계획적인 것은 아니고 증인이 「강압에 의한 합의」를 깬 데 대한 우발적인 보복행위로 보이긴 하지만 사적인 약속을 어긴 데 대해 바로 법원앞에서 살인까지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것은 공권력의 권위나 법의 위엄이 그만큼 실추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범죄의 예방과 응징을 위해 앞으로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증언할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이 다각적으로 강구되어야 하겠으나 그 이전에 당국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공권력의 권위실추다.
근래 우리 사회의 조직화된 폭력배들은 이권을 둘러싸고 피비린내나는 편싸움을 공개적으로 벌여왔고,거기에서 승리한 조직은 유흥가의 업주들로부터 세금을 받듯 돈을 갈취해 왔다. 또한 일부 폭력조직은 아예 유흥업소의 영업권을 강제로 넘겨받아 그것을 조직운영의 자금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권력이 폭력의 조직화를 방치하다시피해 왔고 사건이 났을 경우에도 범죄자를 반드시 잡아 법의 위엄을 보여주지도 못함으로써 폭력배들이 공공연히 법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증인에 대한 보호책 마련에 앞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직폭력이 이미 법의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할 만큼 성장했으며 살인등 극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을 만큼 법을 우습게 여기는 의식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재인식하여 조직폭력을 분쇄할 근본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직폭력이 현재처럼 법질서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는 한 어떠한 증인보호대책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조직폭력 자체에 대한 강력한 응징책은 더욱더 절실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당국은 그동안 피해자나 증인ㆍ목격자 등의 보호에 별다른 신경을 써오지 않았던 점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러한 무신경의 허가 찔린 사건이다. 사실 그동안 경찰과 검찰은 신변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이 수사 편의만을 위해 피해자나 증인ㆍ목격자 등을 공개된 자리에 마구 소환해 왔다. 또 일반국민이 꼭 알 필요가 없는 것인데도 그 상세한 인적사항을 별다른 제한없이 공개해 왔다. 당국의 이런 수사 편의적이고 무신경한 자세가 시민들이 신고나 증언을 기피하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어 왔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온 사실이다.
시민들로부터 활발한 신고나 증언이 범죄수사에 필수적인 것인 이상 당국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신고나 증언이 또다른 피해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서면 증언이나 비공개적인 증언을 가능케 하는 증거보전 신청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하고,공개된 법정에서의 증언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는 등의 증인보호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 신고자나 증인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한다. 피해자나 목격자의 안전조차 보장 못한다면 공권력의 권위는 그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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