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자중 손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선물은 줄 때도 즐겁지만 받을 때는 더욱 기쁘다. 지난 추석 때 선물을 받아 본 이들은 그 느낌이 각별할 것이다. 명절 때만이 아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가족.친지.연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의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정서적 측면을 빼면 선물은 경제학적으로 낭비다. 특히 선물을 현금이 아닌 물건으로 주고받는 것은 사회적 효용을 크게 떨어뜨리는 행위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지불한 가격과 받는 사람이 평가한 선물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선물을 받는 사람은 공짜라 좋기는 하지만 주는 사람보다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그 차액이 사회적 자중 손실(自重損失)이다. 선물을 주려면 차라리 현금으로 주는 게 자중 손실을 줄이는 길이다. 주는 쪽에서 받을 사람이 뭘 원하는지 모를 경우 그 차이가 커지고, 원치 않는 선물일 경우 사회적 손실은 더 커진다. 거부감을 주는 선물은 받는 이의 개인적 효용을 감퇴시킬뿐더러 사회 전체의 손실을 극대화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엘 월드포겔은 크리스마스 직후 학생들이 받은 선물에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조사했다. 대략 구입 가격의 67~90% 정도로 평가한다는 답이 나왔다. 선물을 준 사람에 비해 10~33%를 디스카운트한다는 얘기다. 1992년 미국의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 추정액 500억 달러 가운데 최소 50억 달러에서 최대 165억 달러가 날아간 셈이다. 구매자와 소비자가 다른 데서 발생하는 사회적 낭비를 규명한 '크리스마스 자중 손실(the Deadweight Loss of Christmas)' 이론이다. 공짜로 주는 선물에는 항상 이런 식의 자중 손실이 따른다. 무료로 제공되는 사회 서비스나 퍼주기식 지원은 대부분 들인 비용에 비해 수혜자가 얻는 효용이 작다. 2003년 미국의 무주택자를 위한 공공주택프로그램 자중 손실률은 9~39%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국민이 원치 않는 정책도 심각한 자중 손실을 불러온다. 국민은 경제가 나아지기를 바라는데 엉뚱하게 '자주'와 '역사 바로 세우기'란 선물을 던져 주거나, 부동산값 안정을 원하는데 느닷없이 '세금 폭탄'을 안겨 주는 식이다. 북한은 남한의 퍼주기식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커다란 추석 선물을 보내왔다. '핵실험' 카드다. 누구도 받기를 원치 않을뿐더러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선물이다. 북한의 이 선물은 아마도 사상 최악의 자중 손실을 기록할 것 같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