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신 님들이여”(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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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먼저 가신 님들이여/나의 딸ㆍ아들보다 나이어린/앞날이 구만리같은 이들이여.』
10일 오후2시30분쯤 성균관대 금잔디광장에서 열린 「민자당일당독재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주최로 열린 「민족민주열사,희생자 합동추모제」.<사진>
70년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75년 유신폭압에 할복으로 맞선 서울대농대생 김상진,80년 광주항쟁을 이끌다 투옥돼 단식투쟁끝에 숨진 박관현,5공의 무자비한 고문과 최루탄에 희생된 박종철,이한열 그리고 6공들어 의문의 죽음을 한 조선대학보민주조선 편집장이었던 이철규군 등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1백12명의 넋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릿발같은 양심으로/꽉 막힌 역사에서/불끈 솟아오른/뜨거운 불길이여/죽어서 산 승리의 깃발이여/우리 이제 당신들과 함께 죽어/당신들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옥중의 문익환목사가 보낸 추도시를 문목사의 부인 박용길 민가협공동의장이 애조어린 목소리로 낭독했다.
3층 제단에 일렬로 늘어선 1백12명의 영정들은 20년 짧은 세월동안 현대사의 진통을 그대로 웅변하는듯 했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다 졸지에 아들ㆍ남편을 잃고 「투사」가 돼버린 소복차림을 한 고인들의 어머니ㆍ미망인들이 영정의 얼굴을 만지며 오열하는 모습에서도 격변의 역사를 찾아볼수 있었다.
『이젠 더이상의 죽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도,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죽이는 일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고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피를 토하듯 유가족 호소문을 읽어내려갔다.
『평생을 자식과 남편의 얼굴을 그리며 울며불며 거리를 헤매야하는 우리같은 유가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추모제는 이같은 비원을 담고 끝났다. 그러나 이어 민자당독재분쇄를 외치는 학생ㆍ재야단체와 경찰사이에 돌ㆍ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이 또다시 시작돼 또다른 젊은 민주화의 제물이 생겨나지 않을까 불안한 순간이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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