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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어려운데 북한까지…" 핵 불안감 속 한가위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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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향의 정 듬뿍 안고 다시 일터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8일 밤 서울역 승강장이 고향에 갔다 돌아오는 귀경객들로 붐비고 있다. 조용철 기자

"경제도 어려운 판에 북한까지 왜 저런답니까." 2006년 10월 초, 추석 연휴였지만 고향의 민심은 사납고 싸늘했다. 수년째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시달려 온 고향 사람들은 "제발 좀 먹고 살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추석 민심의 화두는 역시 '민생'이었다. 여기저기서 "밥벌이가 힘들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여기다 연휴 시작과 맞물려 터진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발표는 주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러다 전쟁 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귀성길에 올랐던 본지 기자들이 부산.대구.창원.광주.군산.대전 등지에서 지방 민심을 직접 들어봤다.

(1) 민생고 토로 "이 정부 들어서 살림 더 빠듯해져"

◆ "먹고 살기 힘들다"=대구의 택시기사 송영섭(46)씨는 "요즘 사납금 채우기도 어렵다. 지난 몇 년 동안 도시 전체가 죽어버린 느낌"이라며 바닥을 드러낸 지역 경제를 한탄했다. 송씨는 "손님을 태우면 열이면 열 정부 탓이라고 한다. 요즘 살림살이가 더 빠듯해졌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고 열을 올렸다.

광주에서 의류판매상을 하는 박필주(64)씨는 "지난해 추석 때보다 매출이 25%가량 줄었고, 앞으로도 경기가 되살아날 기미가 없어 걱정"이라며 "정부에선 경제가 괜찮다고 하는데 도대체 현실을 알고 하는 얘긴지 궁금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남 마산시청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순(58.여)씨는 "상권이 비교적 좋은 지역인데도 손님이 줄고 있을 정도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수년 전부터 가격은 싸고 양은 많이 주는 저렴한 식당으로 손님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대전에 사는 배기석(46.자영업)씨는 "대목 때인데도 셔터를 내린 가게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명절 대목을 체감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며 씁쓰레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김모(31)씨도 "지방은 기본 생계가 어려워 보험 가입률이 뚝 떨어지는 추세"라며 "마땅한 대형 기업체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 친구도 제법 많다"고 전했다.

전북 익산시에서 자동차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나종엽(55)씨는 "지난 여름 현대자동차가 파업하는 바람에 공장이 한 달간 멈춰 서 부도 위기를 맞을 뻔했다"며 "대기업 노조야 파업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하청업체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파업에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2) 자녀 취업난 "지방에도 사람 살게 일자리 창출을"

◆ "내 자식 일자리 마련해 달라"=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일자리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주부 박순애(55)씨는 "2년 전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아직도 실업자 신세"라며 "대구에 마땅한 자리가 없어 서울로 올라가봤지만 지역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업에 실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곤 "지역 청년들을 위해 대학 입시처럼 기업 입사에도 '지역할당제'를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부족한 일자리 때문에 텅 비어버린 농촌 지역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충남 서천군의 김우식(38.회사원)씨는 "고향 청년들이 도시에서 취직에 실패하고 농촌으로 돌아오더라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다시 도시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 청년 실업자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농촌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전북 군산시 대야면에 사는 한관수(82) 할아버지는 "마을 30여 집 가운데 빈집이 6채나 된다. 모두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바람에 마을엔 초등학생이 3명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3) 북한 핵 그늘 "자초한 안보위기 … 전쟁 날까 걱정"

◆ "전쟁 나는 것 아니냐"=광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곽양재(48)씨는 "정부가 북핵 문제에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국가적인 안보 위기가 초래된 것 같다"며 "가뜩이나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전쟁 걱정까지 해야 하니 나라가 어찌될지 두렵다"고 말했다. 창원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김정미(27.여)씨는 "북한 문제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하는데 당근만 던져주니 우리 말이 먹히지 않는다"며 "그동안 우리가 퍼주기만 하고 받아낸 것이 뭐가 있냐"고 비판했다.

자영업자 최정욱(61)씨도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였는데 북핵 관련 뉴스를 보더니 정부가 북한을 쉽게 생각하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라고 혀를 차더라"고 전했다. 부산의 회사원 이태훈(41)씨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오냐 오냐'하면서 북한의 응석을 받아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북한은 자신들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위협을 하면 뭔가 얻을 게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며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북한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종합, 정리=정강현.권호 기자

<foneo@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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