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2008년 한반도, 그리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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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내 리더십만 바뀌는 게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환경에도 큰 변화가 예고돼 있다. 2008년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가 나온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3선 여부도 판가름난다. 중국은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후진타오 주석의 장기 집권 여부를 결론짓는다. 일본에서는 이미 9월에 아베 정권이 들어섰다. 한반도 주변 4강이 리더십 변화와 함께 본격적인 새판짜기에 들어가는 때가 바로 2008년이란 말이다. 당연히 한국도 새 국제질서의 형성에 참여해야 한다. 새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마지막 카드를 들고나온 데에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로 궁지에 몰린 탓도 크겠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의 리더십이 바뀌는 틈새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 자신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국제환경이 형성될 수 있는 변수를 던져놓은 것이다.

한국의 입장만 어렵게 됐다. 집 앞에 죽치고 있던 부랑자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과 옷을 주곤 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어느 날 그들이 "우리가 도둑과 강도로부터 당신네 집을 지켜 주고 있다"며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마침내 다이너마이트까지 만들어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이 그렇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꼴이 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순간 한국은 북한의 인질이 된다. 주도권을 잃고 북한에 끌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현 정권의 안보전략은 이미 신뢰를 상실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누구를 공격하려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하고 불과 얼마 전에도 "북한이 핵실험할 징후가 없다"고 장담했던 정권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줄 것 다 주고도 북한에 대해 지렛대 하나 갖지 못했으니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실패한 셈이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주자들은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2008년 한반도 안팎의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과 식견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새 국제환경이 형성되는 시기에 맞춰 새로운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자격은 경제에 대한 식견이다. 한국 경제는 노태우 정권 말기부터 15년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다운 성장을 해본 적이 없다. 성장동력도 뚝 떨어졌다. 기업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청년 실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더 이상 꾸물거리다가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불가능한 한계상황을 맞고 있다.

기업과 국가는 동업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일류 기업이 국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과 유럽에서 대접받는 것도 소니의 전자제품과 도요타의 자동차 같은 게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은 삼성전자와 현대차.LG전자.포스코 같은 기업이 몇 개라도 더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래야 국가 브랜드도 높아지고 양질의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출자총액 제한을 푸는 것은 반개혁으로 몰아붙이고, 각종 규제로 발목 잡고, 기업의 부도덕성만 부각해 어쩌자는 것인가. 정부가 분양가 원가 공개를 주도하는 태도는 또 뭔가. 건설업체가 미분양으로 적자를 보는 데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2008년은 중요하다. 경제와 외교.안보의 새 틀을 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내년 대선은 이 문제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청사진을 놓고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차기 5년이 적어도 향후 30년의 한국 운명을 좌우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