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이 털어논 연쇄 정상회담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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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에 해야 할 일은…” 고르비가 먼저 질문/“전격 회담 소선 3명만 미리 알아/고르비 상대방 얘기 잘 유도했다”
노태우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이 『서로 서슴지 않고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처음부터 굉장히 부드러운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얼음은 한번 녹기 시작하면 다 녹아버린다』(고르바초프) 『시작이 반이다』(노대통령)라는 양국 속담도 써가면서 양국 관계개선을 낙관했다. 노대통령이 6일 주미대사공관에서 주미한국특파원·수행기자들과 1시간동안 오찬하며 소개한 이번 연쇄정상회담 내용을 문답을 통해 옮긴다.
­한소 정상회담에서 소련측이 한국에 표명한 경제협력에 관한 기대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노대통령=경제협력관계는 미리 보도되는 바람에 그 사람들은 우리들이 다 해줄 것이라고 안심하고 들어왔어요.
이번에 고르바초프는 한소 정상회담을 결심하고도 모스크바를 출발할 때까지는 자신을 포함해 전부 세사람밖에 몰랐다고 합니다. 만약에 언론에 노출되면 회담을 이룩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번에도 회담개최를 엠바고를 붙여서 얘기했을때 그냥 새어나가 국익차원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까.
­모스크바측이 회담에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나올지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았는데요.
▲노대통령=고르바초프대통령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해버려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첫마디가 『우리의 오늘 만남이 정상화의 첫 길이다. 얼음은 한번 녹기 시작하면 모두 녹아버리고 만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좀 시간을 끌어서 그 소리를 내가 하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핵심적인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된 셈인지 금방 만난 사람같지를 않았어요. 굉장히 부드럽게 보이고 서슴지 않고 자연스럽게 농담을 했고 나도 그랬고,비록 1시간이었지만 분위기가 부드러웠고 통역도 이중이었지만 동시통역처럼 즉각적이었습니다.
­부시와 만났을 때 한반도문제에 관한 부시­고르바초프 대화내용을 전해들었습니까.
▲노대통령=부시는 북한의 테러·핵무기개발에 대해 소련이 강력히 제재를 가해주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남북한대화등 한반도 평화정착문제에 관해 소련이 최대한 영향력을 가해달라고 고르바초프에게 말했고 고르바초프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미국도 이런 노력을 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남북한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인데요.
▲노대통령=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태도가 문제입니다.
이제 소련과 나의 대화가 이렇게 나갔으니 처음에는 물론 충격을 받겠지만 어느 것이 앞으로 북한이 살아가고,발전해나가고,세계고립에서 벗어나가는 것인지 길이 뻔해요. 그것은 고르바초프도 신념을 갖고 있어요. 처음에는 어떤 방법이라도 최선을 다해 잘못된 북한의 폐쇄노선을 수정토록 영향력을 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북한은 처음의 변화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에서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북한이 최근 군축을 또 제의했습니다.
▲노대통령=처음 있는 일 아닙니다. 내용을 보면 실제 군축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진정 군축을 하자면 양쪽 책임자가 만나야 할 것 아닙니까. 일방적으로 군축하자고 한다면 군축이 됩니까.
­미국정부도 여러차례 유럽식 신뢰구축방법으로 한반도군축이 가능하다고 표명한 바 있습니다만.
▲노대통령=그건 다른 얘기입니다. 오늘 부시대통령과도 그 얘기를 했지만,진정 북한이 무력통일노선을 포기하고 군축방향임을 서로 확인하고 신뢰한다면 얼마든지 군사력도 조정이 가능합니다. 주한 미군규모뿐 아니라 우리 군사력 조정도 가능합니다.
­고르바초프와 한국 또는 남북한의 유엔가입문제를 거론했습니까.
▲노대통령=유엔가입에 관한 구체적 거론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중국측과의 만남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노대통령=앞으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겠죠.
­타스통신은 한소 관계수립은 전반적인 관계와 함께 이루어진다고 했더군요.
▲노대통령=그것은 나도 동감입니다. 신문들이 「내일한다」 「모레한다」 하지만 그걸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점차적으로,급작스럽지 않게,무리하지 않게 해나가야 합니다. 벌써 회담이 이룩된 것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빠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소련이 경제협력 기대가 많은데….
▲노대통령=민간차원에서만 하기가 어려운 게 많습니다. 처음에는 상당한 의욕을 가지고 투자를 하면 수지맞지 않겠느냐고 달려들면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그 어려움을 정리,제거해 주는 장치를 해줘야 합니다.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구상무역이 불가피합니다. 수출해도 돈을 받을 수 없으니 우리 경제에 필요한 자원을 파악하여 바꿀 수 있도록 마련하고,중소기업은 정부를 믿고 우선 수출하면 나머지 보장은 정부가 마련하는등 단계적 조치를 해야 합니다.
­수교를 빨리도,늦지도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대충 1년,2년… 어느 정도를 생각하십니까.
▲노대통령=글쎄,그렇게 오래는 안되겠죠. 양쪽 모두 편리한 쪽으로 가는 것이니까. 어떻게 하면 더 이익이냐… 그것은 공통되니까. 여담으로 얘기하면 샌프란시스코 회담전에 소련측은 「텔리비전 촬영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심지어는 「사진 좀 안 찍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십시다. 부시가 김일성을 초청해 나를 팽개쳐버리고 회담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나도 텔리비전 촬영은 하지 말자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사진도 안 찍겠다는 것은 안된다고 했어요.
「사진을 안 찍겠다면 우리 회담은 무효다」 「그 회담사실을 누가 믿겠느냐」고 했더니 「그건 그렇구먼」하고 응했습니다.
­청와대에서 모스크바와 통화를 하시지는 않았습니까.
▲노대통령=생각해 봅시다.
­한소 관계정상화가 주한미군철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노대통령=나는 혹시 그 문제가 제기될 줄 알았는데 일체 미군철수문제는 고르바초프가 얘기한 게 없습니다. 다만 북한을 대변한다는 뜻에서 주한미군의 핵무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핵무기는 미소가 협조를 잘하고 있으니 그 차원에서 해결하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핵개발 위험성이 높으니 꼭 막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소련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봅니까.
▲노대통령=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북한에 대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을 볼때 영향력은 있다고 봅니다.
또 한편 북한의 체제와 아집을 일거에 확 바꿀 수 있는 쉬운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시안게임때 북경방문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노대통령=그런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상호 초청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노대통령=헤어질때 서로가 『도스비 다니아(또 만납시다)』고 말했어요. 대화도중에 『이렇게 되면 서로 방문할 시기도 오지 않겠느냐』 『물론이다』하는 대화는 오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심정적으로 감싸는 노력이 아울러 필요한 것 같습니다. 충격이 클 것입니다.
▲노대통령=그 얘기는 내가 고르바초프에게 감동을 일으킬 정도로 했습니다. 『나하고 정상회담을 한다고해서 북한을 버리지 마십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북한이 잘못되는 게 아닙니다. 북한도 부흥하고 잘 살게 되어 그런 가운데서 우리와 진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제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요. 그런 차원에서 북한을 도와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인물평 좀 해주십시오.
▲노대통령=대화에 융통성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스」,「노」를 직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얘기를 유도하는 게 특징이더군요. 그리고 소련역사를 뒤바꾼 사명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 그의 성공을 바랍니다.<워싱턴=한남규·이규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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