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처음 열리는 한ㆍ소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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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0년 적대」 씻고 우방시대 첫발/「미수교 만남」 사실상 국가승인/한반도 역학구조 근본적 변화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오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게 됨으로써 한소 관계정상화와 수교가 기정사실로 다가왔다.
이날 회담에선 수교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수교한다는 원칙은 공동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상 미 수교국 정상끼리의 회담은 상대국에 대한 사실상의 국가승인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양국 관계는 수교직전의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소 관계정상화는 우리 정부로서는 통일을 지향한 북방외교의 마무리단계에 들어선 것이며 동북아,특히 한반도정세에 급격한 변화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노·고르비회담의 초점은 어느 정도로 가시화하느냐는 점일 것이다.
우리측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노대통령과 만나기로 한 점을 들어 소련내에서의 북한 견제는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양국 정상의 회동은 양국관계 정상화에 따른 사소한 장애를 모두 넘어서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전제위에서 노·고르비 회담은 한소 수교를 결정적으로 앞당기게 될 것이며 빠르면 연내수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은 그동안 우리와의 관계정상화원칙에 합의했으면서도 실제 수교는 빨라야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로 예상됐었다.
이것은 한소 경제협력에 대한 협의및 보장의 필요성과 북한에 지나치게 급격한 충격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됐었다.
그러나 최근 소·북한 관계는 모스크바방송이 공공연히 김일성우상화를 비난하고 북한이 평양주재 타스통신 기자를 추방할 만큼 악화됐다.
이것은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이 북한에선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바라는 소련의 의도가 김일성에 의해 거부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소련으로서는 또한 한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루더라도 북한이 영향권에서 아주 탈퇴해버리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북한 외채의 80%가 대소 외채며 북한은 원유·무기체계·원자력기술등을 거의 전부 소련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특히 고르바초프가 우리와 정상화를 서두른 직접적 이유는 경제위기 때문이다.
소련 경제는 개혁·개방화로 인한 기대수준상승에도 불구,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소련의 대서방 수입대금 체불액이 1백억달러에 이른다는 추계가 있을 정도다.
소련은 이에따라 신흥공업국인 우리나라의 건설·제조업분야등을 유치,시베리아 개발등 경제개발의 촉매가 되게 하고 일본의 대소투자를 촉진시키려는 의도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소련의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경제협력 요구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정부차원의 보장과 그를 위한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정경일치를 거듭 요구해왔기 때문에 경제개발이 시급한 소련이 서둘러 우리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분석이다.
우리측의 대소경협 규모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민간부문포함,1백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란 추산도 있다.
소련은 또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 역할을 하면서 핵안전조치협정에도 가입하지 않는 북한의 김일성체제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효과도 계산한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한소 관계정상화에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나 군사·기술·경제면에서의 대소의존도가 워낙 높아 아주 이탈해 버릴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처음에는 강력히 반발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립주의를 더이상 지탱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따라 소련이 남북한간 교류의 중재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소련과의 관계정상화로 북방외교의 마지막 관문인 중국과의 관계개선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천안문사태이후 북한과 더욱 밀착,국제사회에서 고립상태에 있는 중국은 미소가 상호양해한 한소 관계정상화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세력균형에 무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주목을 끄는 것은 우리의 지나치게 급격한 대소접근을 우려스런 시각으로 바라보던 미국이 오히려 한소 정상회담을 지원한 배경이다.
그동안 미국은 한반도정세와 관련해서도 우리의 지나치게 급격한 대소 접근이 이 지역에서의 미국 우위의 힘의 균형을 깨뜨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품고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지원한 것은 한소수교가 흐름이고 대세인 이상 이를 선제 주도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과 미소간의 새로운 데탕트 분위기속에서 소련을 간접지원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또한 한소 수교는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나 그것이 흐름이라면 이를 주도하면서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울타리관계를 거듭 확인해나가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아무튼 미소 정상회담과 한소 관계정상화는 미·일,소·중의 4강 구조속에 현상을 유지해온 한반도 역학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것이 나아가 남북한의 통일문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임은 틀림없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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