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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차례상' 빼먹은 충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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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추석 연휴, 극장가에 '풍년가'가 메아리친다. 열흘 가까운 황금 연휴, 충무로가 호기를 놓칠 리 없다. 들판에 떨어진 이삭 하나라도 건지려는 듯 한국 영화의 관객 확보전이 뜨겁다. '타짜' '라디오 스타' '가문의 부활' '구미호 가족' 등이 극장가를 장악했다. 말 그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다. 외국 영화는 거의 양념 신세다.

그런데 영화계는 올해 커다란 '결례'를 했다.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하고, 차례상을 차리는 걸 잊어 버렸다. 아니, 대부분 성묘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운규(1902~37)의 명작 '아리랑'을 두고 하는 말이다.

1일은 '아리랑' 개봉 8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한국 근대영화의 물꼬를 튼 '아리랑'이 첫선을 보였다. '눈물의 아리랑, 웃음의 아리랑. 누구나 보아 둘 이 훌륭한 사진. 오너라. 보아라'라는 선전 문구를 내세운 '아리랑'은 일제시대 한국인의 텅 빈 마음을 달래준 일대 사건이었다.

2006년 가을, 충무로는 '아리랑'을 까맣게 망각했다. 나운규를 기억하거나 '아리랑'을 기념하는 학술행사 하나 열리지 않았다. '아리랑' 80주년 특별전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한국영화를 키운다는 영화진흥위원회나 우리 영화 자료를 정리한다는 영상자료원 모두 '아리랑'에 대해 침묵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직도 '아리랑' 원본 필름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 영화를 본 사람이 거의 없어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 80주년이라고 요란한 소문을 내고 잔치를 벌일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관심은 있어야 했다. 한국 근대 영화의 기원으로 꼽히는 '아리랑'의 80주년은 무심코 흘려보낼 일이 아니다. '왕의 남자'와 '괴물'이 한국 영화 흥행사를 거푸 새로 쓰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올 충무로도 그 뿌리는 결국 '아리랑'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운규를 빼고 한국 영화사를 얘기한다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빼고 영국 희곡사를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아리랑'만큼 자주 리메이크된 한국 영화도 없지 않은가. '아리랑'은 나운규 이후에도 이강천(54년), 김소동(57년), 유현목(68년), 임원식(74년), 이두용(2002년) 감독에 의해 시대에 맞게 변주돼 왔다.

'아리랑'의 홀대는 한국 영화 문화의 일천함을 드러낸다. 극장에는 사람이 몰려들어도 '문화로서의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이다. 소수 대형 영화가 스크린을 독식하자 충무로 일부에서 '영화 종(種) 다양성 확보'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에 앞서 '영화 문화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할 것 같다. 제작-흥행-비평-학문 네 박자가 고루 맞아떨어져야 충무로도 더욱 기름지게 굴러가지 않겠는가. '아리랑'은 그 일각일 뿐이다.

"문전(門前)의 옥답(沃畓)은 다 어데 두고 쪽박 신세가 웬일이냐."

영화 '아리랑' 주제가의 마지막 부분이다. 일제시대 한국 농민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준다. 혹시라도 지하의 나운규도 지금 이런 심정은 아닐지. 눈앞의 옥답(최첨단 멀티플렉스)에 풍년가를 부르고 있는 충무로가 되새길 대목이다. 월드컵의 환호를 뜨겁게 달군 윤도현의 응원가 '아리랑'도, 문화관광부가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브랜드로 선정한 민요 '아리랑'도 나운규에 의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