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불임부부 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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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불임부부에게 임신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기는 그리 쉽지 않지만 원인만 잘 알아내면 뜻밖에 아주 간단히 아기를 낳게 해 줄 수도 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김모씨(32·여)가 불임클리닉을 찾아왔다. 남편은 세 살 위인 35세로 신체건강하고 혼자 정액검사를 몇 번 받았으나 정상으로 나왔다고 했다.
김씨도 두 군데의 산부인과를 찾아 의사가 권하는 검사를 다 받았다고 했다. 그 결과 부인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즉 임신을 하려면 이상이 없어야 되는 요인들, 말하자면 ①배란이 잘되고 ②난관도 양쪽이 잘 뚫려있고 ③자궁내막검사도 정상이며 ④각종 호르몬검사가 정상이고 ⑤자궁경관점액도 정상이며⑥복장경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필자는 이 부인에게 부부가 함께 산부인과에 갔거나, 혹은 성교 후 검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이 부인에게 배란기 새벽에 성교를 갖게 하고 3∼4시간이내에 병원에 오도록 해 자궁경관 내에 살아있는 정자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성교 후 검사를 시행했다. 이 검사를 우리 의사들은 흔히「궁합검사」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검사결과 살아있는 정자가 전혀 없었으며 그 다음날 배란기에 같은 검사를 반복했으나 역시 결과는 같았다. 이들 부부는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그 남편의 정자와 그 부인의 경관점액이 맞지 않아 정자가 번번이 죽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만일 이 부부가 헤어져 각기 다른 남자·여자와 결혼하면 대개 임신에 지장이 없다.
이 사실을 진단해낸 이상 치료는 간단했다. 남편의 정액을 받아 인공으로 부인의 자궁안에 넣어주면 임신성공률이 매우 높다. 이 부부도 이런 방법, 즉 「배우자간 인공수정」으로 임신에 성공,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았다.
한편 박모씨(28·여)는 남편이 검사결과 무정자증으로 판명됐다며 진찰실을 찾아왔다. 이들 부부는 의논 끝에 「비배우자간 인공수정」(남편아닌 제3자로부터 정액을 공여받는 인공수정)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물어보니 남편은 정액검사만 받았지 고환의 조직검사는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필자는 우선 부인의 불임검사를 했으나 이상을 발견치 못했다. 그래서 남편을 비뇨기과에 보내 고환의 조직검사를 시켰다. 그 결과 고환에서 정자생산이 정상적으로 되고 있으며 단지 생산된 정자가 밖으로 나오는 파이프인 수정관이 막혀 있음을 알아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정자가 성교 때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됐고 이 부부는 곧 임신을 할 수 있었다.
까딱 잘못 했으면 멀쩡한 남편을 놓아두고 다른 남자의 정자로 임신을 할 뻔한 케이스였다.
이처럼 정액검사로 무정자증으로 판정되더라 도고환에서 정자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경우, 정자가 생산은 되나 밖으로 나오는 통로가 막혀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점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장윤석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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