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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들의 잠재력을 발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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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육아 문제로 직장을 떠났던 여성들 다시 채용하려는 기업 늘어

주중(週?의 어느 날 오후 4시30분, 캐터리나 밴디니(38)는 과거 같았으면 미국 보스턴의 NBC TV 방송실 앵커 데스크에서 5시 뉴스의 주요 제목들을 검토하고 원고를 교정하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밴디니는 백베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다리를 얹어놓은 채 한가하게 앉아 자신이 다녔던 방송사의 뉴스가 시작되는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본다. 오는 10월 밴디니는 쌍둥이 딸을 분만할 예정이다. 대다수 TV의 여성 언론인들은 출산 휴가를 짧게 사용한다. 밴디니의 전임자는 6주를 쉬었다.

그러나 밴디니는 다른 선택을 했다. 딸들이 태어난 뒤 전업주부가 되려고 지난 8월 앵커직을 그만뒀다. “최소한 아기들의 심신이 발달하는 초기 몇 년 동안은 가능한 한 아이들 곁에 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밴디니는 설명했다. 그녀는 언젠가는 다시 뉴스룸으로 복귀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 보장이 없다는 점도 안다. “복직하기가 매우 어렵다. 큰 모험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밴디니는 새로운 직장 풍속도의 귀감이 됐을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여성이 자녀 양육이나 노부모 봉양을 위해, 혹은 맞벌이 부부에게 흔한 가정생활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선망의 대상인 고소득 직장을 미련없이 떠나버리는 동향 말이다. 여권운동가들은 그런 동향을 일보 후퇴라고 비판했다.

회의론자들은 그런 이유로 직장을 떠나는 여성이 많다는 통계수치를 의심했다. 그러나 최근 ‘여성이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이유’를 둘러싼 논쟁은 미묘한 변화를 보여왔다. 쟁점은 봉급생활을 포기하는 여성이 너무 많다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점은 그런 여성들이 다시 직장생활에 복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직장과 가정생활의 병행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요즘 여성들에게 회사에 남아 고위직을 향해 계속 매진하라고 설득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대신 직장을 떠난 여성들이 다시 현업에 복귀하는 일을 돕는 방안을 찾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이런 변화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유명한 사례가 점차 늘어난다. 메레디스 비에이라는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CBS의 ‘60분’ 프로그램 일을 그만둔 일로 유명했다. 그녀는 ABC의 ‘더 뷰’ 프로그램에서 9년간 일한 뒤 지난주 케이티 쿠릭을 대신해 NBC의 ‘투데이’ 프로그램을 맡았다.

자녀와 재결합하려고 1998년 펩시코 고위직을 사직했던 브렌다 바니스는 지난해 생활용품 제조업체 사라 리(Sara Lee)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아이를 위해 5년간 전업주부로 지냈던 여배우 캘리스타 플록하트는 이번 달에 네트워크 TV로 복귀한다.

한편 많은 회사(투자은행·컨설팅회사·법률회사 등) 역시 일반 여성들의 직장 복귀를 보다 수월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갑자기 이타주의가 발동해 그러는 게 아니다. 이들 직장을 떠난 여성의 아직 충분히 발휘되지 않은 재능을 활용하려는 목적에서다. Women@Work Network의 공동 설립자인 엘리자 섄리는 “이런 일에 먼저 나서는 회사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인식이 고용주들 사이에서 번져간다”고 소개했다.

이는 결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여성들은 육아·가사 책임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이상적인 방안들을 모색해 왔다. 지난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한 연구 보고서는 이 문제의 초점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대학원이나 학부 학위를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하고 취업 중인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37%는 직장 생활을 중단한 적이 있으며 그 평균 기간은 2.2년이었다. 대다수는 복귀를 원했지만 다시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40%뿐이었다. 이 연구는 회사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여성이 그토록 적은 이유 중 한 가지를 보여줬다. 이 연구 보고서의 선임 집필자이자 직장-생활 정책 연구소의 책임자인 실비아 앤 휼렛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그냥 여성을 채용한 뒤 그들이 고위직으로 올라올 때까지 20년 정도 기다려 보자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빠져나가는 인원이 너무 많았다. 여성은 잠시 동안이라도 일단 직장을 떠나고 나면 복귀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보고서가 발표된 이래 기업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시장조사 기관인 레만 브러더스는 한때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적이 있는 실직 여성 75명을 직장 복귀 세미나에 초청했다.

앙코르로 불린 그 프로그램의 일부는 금융 업무의 기술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들의 퇴직 기간에 발생했던 업계 변화를 요약해 알려준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취업 면접 때 집에서 쉬는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를 얘기하는 요령처럼 실제적인 문제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됐다.

레만 브러더스는 올 봄에도 비슷한 행사를 개최했고 오는 11월에도 또 다른 행사를 계획 중이다. 레만 브러더스가 그 여성들 중 채용한 사람은 지금까지 16명이다. 이런 신규 고용 외에도 그 프로그램은 대학에서 취업 설명회를 열 때 좀 더 가정 친화적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됐다(여대생 가운데 월스트리트 경력에 관심을 갖는 비율은 감소돼 왔다).

이 프로그램은 또 기업들이 새로운 대학 졸업자와 MBA 자격자를 신규 채용하거나, 경쟁사의 직원을 영입하는 문제에서 기존 시각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레만 브러더스의 ‘다양성 전담 중역’(chief diversity officer)인 앤 에르니는 “우리는 이제 제4의 인재 풀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들은 여성이 자신에게 적합한 수준에서 직장에 쉽게 복귀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들을 시작했다. 컨설팅 회사 부즈 앨런 해밀턴에서는 한때 정규직원이었던 여성 100여 명이 현재 ‘보좌역’ 프로그램에서 근무한다.
이 회사는 연속성이 없는 직무(예를 들어 조사업무이나 제안서 작성 등)를 떼어내 보좌역들에게 맡긴다. 보좌역들은 정규직원은 아니지만 이 회사의 개인 e-메일 주소를 유지한다. 일부 남성이 포함된 보좌역들은 프로젝트별로 급여 수준뿐만 아니라 여타 조건들도 협상할 수 있다.

예컨대 1주일에 며칠 동안 일하는지, 재택근무는 가능한지, 출장도 가는지 등이다. 애니 싱은 1997년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뒤 부즈 앨런 해밀턴에서 근무하다 2002년 퇴사했다. 그녀는 현재 버지니아주에서 이 회사의 보좌역으로 근무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될 듯한 프로젝트는 거절한다.

그래도 새로운 일감을 얻을 기회는 늘 생긴다. “정규직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의 전문 분야 경력에서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회사 측은 그녀가 정규직으로 복귀할 준비가 되면 번거롭게 이력서를 보낼 필요는 없다고 배려해 준다. 디앤 아귀레 부사장은 “우리는 그런 여성이 복귀 문제만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여러 경영대학원은 여성의 직장 복귀를 돕는 일이 수익성 있는 틈새 시장이 될 가능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올해 몇몇 경영대학원(와튼·하버드·뱁슨·다트마우스·페퍼다인 대학 등)은 직장 복귀 강좌를 시험적으로 개설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페퍼다인 경영대학원은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을 겨냥한 정식 MBA 과정을 개설했다(올해 1월부터 시작됐다). 다트마우스대는 10월부터 시작되는 11일짜리 ‘비즈니스 복귀’ 간부교육 강좌를 준비했다. 세 아이를 둔 로나 레이에스 시에는 다트마우스 프로그램에 등록할 예정이다.

그녀는 1998년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모건 스탠리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녀는 구직 활동을 재개할 뿐만 아니라 가사와 육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변화 속도가 빠른 일자리를 관리하는 방법에 관해 좀 더 배우길 희망한다.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다른 여성과도 교류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여성의 직장 복귀를 돕는 일이 점차 탄력을 얻어 가지만, 기업들이 이를 마법의 해결책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시키는 프로그램은 다이어트 열풍처럼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은 한때 직장 내 탁아소 운영이나 일감 나누기(1명분의 일감을 둘 이상이 나누어 일하는 노동 형태)에 지대한 열정을 쏟았었다.

그러나 그런 혜택을 보는 여성 수는 아직도 일부 옹호론자의 기대만큼 크게 늘지는 않은 듯하다. 직장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자문 단체인 카탈리스트의 아일린 랭 사장은 “그런 프로그램들은 매우 복잡한 현상의 일부분을 너무 간단하게 설명하려 했던 구호(口號) 차원의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심지어 직장에 복귀한 여성조차 여전히 전문직 여성이 직면하는 보다 큰 문제들 때문에 고생한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역할모델이 될 만한 고위직 여성이 없고,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기회가 결여됐다는 문제다.

또 진보적인 회사들이 직장 복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긴 하지만 이런 변화과정을 성공적으로 헤쳐나가는 책임의 대부분은 여전히 여성 자신의 몫이라는 문제도 있다. 휴스턴에서 변호사 일을 하다 그만둔 모니카 새뮤얼스는 ‘직장에 복귀하는 엄마들(Comeback Moms)’이라는 저서를 공동집필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둔 뒤 다시 경력을 살릴 방안을 찾지 못하는 여성 법대 동창생들을 많이 만난 뒤에 그 책을 구상했다. 새뮤얼스는 직장 복귀를 준비하는 여성을 주눅 들게 만드는 예상 밖의 요인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다시 직장인처럼 옷을 입어야 하는 문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 등이다(“블랙베리가 뭐지?”).

아내가 집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남편들이 만족감을 느낀다는 점도 이런 여성들 중 일부를 고민하게 만든다. 자신감의 결여를 포함해 이처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새뮤얼스는 자그마한 일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예를 들어 소아과병원에서 가족사항을 기록하는 서류의 ‘직업란’에 ‘전업주부’라고 쓰는 대신 계속해 ‘변호사’나 ‘회계사’라고 기입하는 일이다. 새뮤얼스는 “여성들은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완전히 결별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뉴스 앵커직을 그만둔 밴디니의 경우 직장 복귀 문제는 곧 태어날 아기들에 비하면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진다. 그녀는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있다. 이는 남편이 항공장비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출산 문제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의 에이전트인 팸 풀너는 TV 방송사 간부들이 그녀를 잊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한다.

밴디니가 직장에 복귀하려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풀너는 자신이 관리하는 여성 언론인의 대다수가 예상보다 일찍 직장에 복귀한다고 밝히면서 “밴디니가 복귀를 원할 때쯤이면 그녀를 위한 일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고 운이 따르면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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