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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무료입장 '공짜의 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3일 오전 11시 서울 신림동 관악산 입구. 주차장부터 등산객이 빼곡하다.

진입로는 출근길 신도림역을 연상케 할 정도의 북새통. 완만한 경사지만 인파에 치여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다. 진입로부터 줄지어 산에 오르는 진풍경이다.

호젓한 산행을 기대한 등산객들은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만다. 사정에 밝은 사람은 비교적 한산한 서울대 신공학관 뒤편의 등산로를 택한다.

'공짜의 역설'이 빚어낸 결과다. 공짜가 이용자에게는 혜택이어야 하는데, 되레 불편함을 가져온 경우다.

지난해 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무료 개관도 마찬가지였다. 휴일 하루에만 3만여명이 몰려 기본적인 관람조차 힘들었다. 30여명의 부상을 몰고온 지난 3월 '롯데월드 무료개장 사건'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약간의 요금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돕는다. 충분히 지급하고 즐길 의사가 있는 사람들만 찾기 때문이다. '공짜' 대신 '수익자부담 원칙'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수익자부담 원칙'을 버리고 '공짜'를 택했다. 내년부터 전국 20개 국립공원이 무료 개방된다. 종전 1000 ̄2000원의 입장료가 사라지는 셈이다. 국회에 제출된 내년 예산안에도 이미 반영돼 있다.

국립공원에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관광객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효용)은 그만큼 줄어든다.

공짜로 즐길 심산이라면 국립공원내 사찰 방문은 힘들 수 있다. 입장료가 사라지면 사찰에서 따로 요금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국립공원 입장료에 사찰유지비도 포함돼 있었다.

세금 부담도 늘어난다. 연간 200여억원의 국립공원 관리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국립공원에 가지 않는 사람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수익자부담 원칙'을 포기한 결과다.

정부도 처음에는 이같은 논리를 들어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를 반대했다. 하지만 결국 여당 등 정치권의 힘에 밀렸다.

물론 입장료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국내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가장 큰 명분이다. 때마침 여행수지 악화가 경상수지까지 적자로 돌려세우며 힘을 보탰다.

주5일 근무제 도입으로 여가시간도 늘어난 상황. 요금 걷는데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다는 주장까지 가세했다.

어찌됐든 국립공원이 예정대로 무료화된다면 '공짜의 또다른 역설'에 마지막 한 가지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겠다.

미국의 '스타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가 찾아낸 사례다. 이스라엘 하이파유치원은 학부모들의 '지각돴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일과가 끝나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가야 하는데, 부모들이 늦으니 교사들까지 퇴근이 늦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벌금'이다. 20분 늦을 때마다 3달러씩. 벌금제를 시행한 결과는? 예상과 달리 부모들의 지각은 오히려 늘어났다. 벌금이 부모들의 양심에 '면죄부'를 준 것. '공짜'보다 '유료'가 도덕적 해이를 더 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립공원 입장이 무료화될 경우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산불 등 환경훼손이나마 줄어든다면 다행이겠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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