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국제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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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번 소련에서 처음으로 국립 「말리극장」이 내한해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공연한 것은 한국연극계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이 한 공연으로 한국연극이 반세기 이상이나 지향해 왔으며 노력을 경주해온 신극의 사실주의적 전통의 성과가 확연하게 드러났을 뿐 아니라 그 수치스러운 결과에 깊은 자책과 비판을 강요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체호프를 졸업하면 연극을 졸업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체호프 극의 완성은 곧 리얼리즘 연극의 완성을 뜻한다는 1차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말리극장」의 공연이 보여준 체호프는 비단 리얼리즘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현대의 가장 특징적인 새로운 연극의 전망을 모두 제공해주고 있었다는데 실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번의 『벚꽃동산』은 최상의 리얼리즘은 상징주의로 넘어간다는 사실, 그의 정신적 리얼리즘은 표현주의 사상과 기법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시켰다. 그뿐만 아니다. 체호프는 인생은 무엇인가의 질문에 『당근은 당근이듯이 인생은 인생이다』라고 답했는데 이말 속에는 실로 인생이라는 미스터리의 모든 것이 포괄되어 있었다.
그의 극은 바로 이 말의 구체적인 구현이었으며, 그 말의 진실성이 오늘 우리시대에 와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확인과 놀라움은 만약 이 공연이 미숙하고 불완전한 것이었다면 절대로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뛰어난 연극공연은 기적을 낳은 경이이며 계시가 된다.
이러한 공연이 진작에 있었더라면 한국연극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가정해본다. 분명 체호프와 리얼리즘에 대한이해와 그것을 구현하는 연극의 일반적 자세와 태도는 오늘의 그것과는 같지 않았을 것 같다. 진정한 국제교류는 바로 여기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게된다.
88년의 올림픽은 예술의 국제교류의 기폭제가 되어 그 이후 외국예술단체의 내한공연은 현저히 많아졌고 그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과의 교류가 그것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연극의 교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연극은 글로써만이 아니라 무대상연을 통해서만 그 빛을 발할 수 있으며 체호프의 경우는 수백배 더하다. 번역극으로도 체호프와 셰익스피어를 이해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연극은 생활의 총체인 문화를 그대로 반영해 주고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오직 그 문화를 발전시켰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진솔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은 또한 우리가 체호프의 러시아적인 것, 셰익스피어의 앵글로색슨적인 것을 보기 즐거워하는 문화적·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그래서 연극의 교류는 러시아인·영국인을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 작년 겨울 일본의 『사카나이 진혼곡』이나 금년 봄『교겐』은 얼마나 일본인의 일본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었던가.
이 모든 것은 작품과 무대의 완성도가 높은 것이어야 가능하며 그 점에서 초청의 선별이 매우 신중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렇지 못했을 때 타락한 아류문화와 기생충적 문화의 오염을 촉진시킬 위험이 따른다. <연극평론가·한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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