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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커버스토리] "살짝 화장한 남자가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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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28.CJ건강식품 사업팀)씨는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도수가 낮은 것만을 가려 마신다. 매일 운동하고 한주에 두 번씩 얼굴 팩을 한다. 오로지 고운 피부를 갖기 위한 일이다. 양 눈썹 사이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던 이모(30.회사원)씨. 그는 최근 두 차례의 성형 수술로 주름을 완전히 폈다. 이씨는 "쓸 데없이 돈을 쓴다며 구박한 직장 동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피부 관리도 받고 있다.

남성들도 얼굴 가꾸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터넷에 남자 성형 동호회가 생겨났을 정도다.

꽃미남을 꿈꾸는 남자들=다음 카페 '남자 성형 나눔방(cafe.daum.net/manart)'에는 개설 1년 만에 1천5백여명이 가입했다. 주로 20대가 회원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이상형은 탤런트 원빈, 일본의 연예인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 하나같이 뚜렷한 이목구비에 예쁘장하면서도 남성미를 풍기는 얼굴이다.

쌍꺼풀 수술.코 수술을 많이 한다. 쌍꺼풀 수술만 벌써 다섯 차례나 받은 회원도 있다. 레이저로 모근을 제거해 수염을 아예 없애는 수술도 인기다. 면도를 자주하면 피부가 나빠진다는 게 이유. 입 주변의 팔자 주름을 펴 '부티'가 나 보이게 하는 '귀족 수술'도 느는 추세다.

이들이 성형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보다 잘 생긴 남자에게 여자 친구를 세 번이나 뺏겼다" "정직하고 우직한 아버지들 스타일, 요즘은 안먹힌다. 남자도 돋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근육은 운동해서 만들고, 공부도 죽어라 하면 되지만 유전적으로 억울하게 못생긴 얼굴은 누가 알아주나" 등이다.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운영자(23.대학생)도 "수술 후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모르던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역시 수술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자의 화장은 어디까지?=요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얼굴을 가꾼 남자를 원하고 있을까. week&팀은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현장 실험에 나섰다.

20대 중반의 남자 모델을 ①맨얼굴 ②머리 손질 ③가벼운 피부 화장 ④풀 메이크업 등의 네 단계로 변신시켰다(오른쪽 그래픽 참조). 단계별 얼굴 사진을 나란히 놓고 최고의 모습에 녹색 스티커, 최악의 모습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이도록 했다.

설문 대상은 숙명여대(8백여명).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문화센터(주부 2백여명).LG전자(20대 여자 회사원 1백50여명).CJ(남자 회사원 1백여명) 등 모두 4개 그룹. 공통으로 최악의 점수를 얻은 모습은 맨얼굴이었다. 가장 선호된 얼굴은 가벼운 화장을 한 3단계였다.

흥미로운 건 예상외로 여대생들이 남자의 짙은 화장에 대해 네 집단 중 가장 큰 거부감을 보인 것.

남자의 화장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LG전자의 여직원들이었다. 열 명 중 세 명이 4단계(짙은 메이크업)를 최고로 꼽았다.

남성들은 짙은 메이크업(4단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편이었다(싫다 39%). 그러나 맨얼굴(싫다 49%) 보다는 짙은 화장이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아예 꾸미지 않는 것보다 조금 '오버'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week&팀이 조인스닷컴(www.joins.com)에서 벌인 인터넷 설문 결과(8백65명 참가) '코팩.컬러 로션 등을 쓰는 남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남녀 모두 43%에 달했다. 성형수술에 대해서는 더 관대했다. 과반수(52%)가 '외모가 개선된다면 남성의 성형 수술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조금 더 꾸며라=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1천8백억원대였던 남성화장품 시장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지금까지 2천1백억원대로 훌쩍 뛰었다.

외모 가꾸기 이벤트에도 남성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애초 여성들만을 상대로 열었던 피부 미백 스케일링 이벤트에 남성 신청자가 50여명이나 몰려들었다.

LG생활건강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 '보닌 모노다임'이 이달 초 마련한 남성 미용 강좌에도 10명 모집에 1백여명이 지원했다. 이 강좌에 참여한 백진식(31.회사원)씨는 "팩과 스크럽을 하고 나면 피부결이 좋아져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강좌 참석자 중 절반 이상이 '자기 만족'을 위해 외모에 신경쓴다고 했다.

'보기 좋은 남자'를 선호하는 여성들의 경향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인터넷 설문 결과 '배우자나 이성 친구가 외모에 더 신경썼으면 좋겠다'고 응답한 여성은 열에 넷 정도. '그렇지 않다'고 답한 여성은 23% 정도였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커플매니저 김수경씨는 "외모에 무신경하던 남자 회원이 헤어스타일 등을 바꾸고 나서 교제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이 예전엔 경제력 등의 조건만 봤지만 요즘엔 스타일이 마음에 안들면 아예 만나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중년.노년 남성의 변신은 무죄=나이 든 남성들도 '얼굴 가꾸기 행렬'에 끼어들고 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김모(서울 행당동)씨는 얼마 전 복부 지방흡입술을 받았다.

"나온 배를 보기만 해도 숨이 차고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내에게 주름을 펴는 보톡스 주사를 맞자고도 제안했다. 아내는"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도 멋"이라며 퇴짜를 놓았지만 그는 다시 설득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드림피부과 이호균 원장은 "40~50대 중년 남성들은 검버섯 치료 등 젊음을 유지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인다. 70대 환자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설문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얼굴에 기름이 흐르거나 부스스한 남자는 게을러 보인다'고 응답한 남성의 비율은 20대(72%).30대(78%).40대(86%).50대 이상(88%) 등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했다.

노소를 불문하고 남성들이 외모를 가꾸는 추세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인터넷 설문 결과 '5~10년 뒤에는 중년 남성이 색조 화장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응답자가 23%에 달했다. '남성용 립스틱이 나오면 써볼 생각이 있다'는 응답도 17%였다. 몇 년 후 과연 우리는 립스틱을 짙게 바른 청년이나 색조 화장을 한 중년 남성들과 자주 마주치게 될까.

김선하.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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