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법원장의 이번 발언이 상당 부분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검찰에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앞으로는 서초동을 향해서는 용변도 안 보겠다"는 말이 나오고, 변호사를 향해 "법률 장사꾼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법조 3륜(輪)'의 폐해를 지적하는 그의 말은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효과가 있었다. 검찰과 변호사계가 자신들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대법원장의 명쾌하고 분명한 각종 발언은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에 근거한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대법원장도 이를 크게 의식한 듯하다. 그는 "나는 포퓰리즘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슴이 확 막힌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으로 최고로 피해를 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며 섭섭한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성경과 기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와 재판의 근본은 성의를 갖고 하는 데 있다"는 뜻인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구절인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를 인용하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나는 재판을 내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포퓰리즘이란 지적에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법원을 위해 크게 한 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략에선 성공했지만 전술에선 실패했다"는 이 대법원장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검찰에 사과성 발언을 하면서도 검찰이 증거분리제출 제도를 전국적으로 실시키로 한 것을 겨냥해 "역시 검찰이 우리보다 한 수 위다"라는 말은 사법계 수장으로서의 권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이념적으로는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행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오히려 법원은 물론 법조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사법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중함과 무게가 실려야 한다. 수도승처럼 입을 꼭 다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장의 직설적 화법에 당혹스러워 하는 국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1년 전 대법원장으로 취임할 때 '코드 인사' 논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국민은 그의 다변이 현 정부의 행태와 비슷해지는 것 같아 발언의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마침 이 대법원장이 10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와 사법제도 개혁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옳고 그름을 말로써 따지지 말라"는 선사(禪師)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박재현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