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옛날 국수 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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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옛날 국수 가게'- 정진규(1939~ )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골목 어귀에서 국수를 뽑으며 일생을 사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대목도 없겠고 흥할 일도 없겠고 이름이 날 리도 없겠고 딱히 낙심할 일도 없겠다. 조금만 더 욕심부렸다면 이미 사라졌을 미묘하고 명 긴 평심(平心)의 제조업. 닮고 싶다. 국숫발로 경천위지(經天緯地)하고 있을 그 마당, 심상찮은 공부터도 될 듯.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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