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 변천사] 다이알 비누, 송월타올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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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6년 10월 6일은 민족의 큰 명절 추석이다.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들도 2000만 명에 달한다. 고속도로에서 밤을 지새워 피곤하지만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을 보면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명절이 좋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가는 이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하나 있다. ‘추석선물?甄? 지금은 그 형태가 많이 바뀌었지만 많은 직장인은 해마다 나이에 관계없이 추석이면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마음이 설렌다.

각 기업들은 추석이면 ‘떡값’이라는 보너스를 주거나 자기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을 나눠주며 사원들의 사기를 올려주곤 했다. 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선물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두산 관계자는 “1990년 초반 전골냄비를 추석 선물로 준 적이 있다”며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추석 선물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IBM의 권순호 과장은 “이번 추석 선물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각 사원이 직접 구입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각 사원에게 ID와 비밀번호를 알려준 다음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대기업의 10% 정도가 이런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추석 선물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미소에서는 쌀 선물도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선물에 대한 기록은 1950년부터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폐했던 시대였지만 인정은 살아있었다. 배고픔을 달래는 게 최고의 선물이던 때이기도 했다. 있는 사람이 이웃의 가난한 이들에게 쌀 한 됫박, 달걀 한 꾸러미, 돼지고기 한 근 등 직접 기르고 가꾼 농축산물을 전해주는 추석 선물이 대부분이었다. 또 자신의 업종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사례도 많았다.

포목집은 옷감 한 필, 양조장은 술 한 말 등 각자 가진 물품을 제공하는 선물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정미소 직원들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던 정미소에서는 쌀을 추석 선물로 나눠줬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추석 선물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백화점이 등장한 것이다. 실질적인 추석 선물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시기로 꼽힌다. 이 당시 백화점들은 명절 선물 광고를 내보내고 카탈로그를 제작하는 등 본격적인 선물 판촉을 시작했다. 기업에서 추석 선물을 관리하는 곳은 대부분 총무팀이다. 이들에게 가장 쉽고 사원들이 선호하는 선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료가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 가장 인기있던 추석 선물은 라면 50개들이 한 상자, 밀가루, 설탕, 빨랫비누 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호화 추석 선물로 인해 사회적인 물의가 일기도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상류층은 당시 고급술인 맥주, 양복지, 화학조미료인 미풍이나 통조림, 다리미 등을 선물해 서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했다”고 기억했다.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1970년대를 주름잡은 기업 추석 선물은 공산품들이다. 합성수지·그릇·라디오 등이 나왔으며 화장품·속옷·양산·어린이 과자 등이 등장했다. 50년대 인기를 끌던 식료품은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조미료와 식용유가 인기를 누렸다. 가장 큰 인기를 끈 추석 선물은 당시 최신 제품이던 다이알 세숫비누와 반달표 스타킹·송월타올·커피세트·라디오 등이었다.

“옆집 남편은 다이알 세숫비누를 가져왔다”고 남편에게 타박하다가 부부싸움이 벌어진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선물을 들지 않고 집에 들어가는데도 최고의 대접을 받은 이들이 있다. 은행원들이었다. 집에 봉투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창립 기념일이나 특별한 행사일에는 송월타올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추석 때는 금융업체의 성격상 현금 봉투를 받았는데 아내의 반응이 괜찮았다”고 설명했다.

80년대부터 갈비세트 등장

추석 선물이 문화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80년대다. ‘갈비세트’가 국민 추석 선물로 각광받기 시작한 시기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추석 선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됐고 선물 품목도 고급화,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10만원대 고가 선물이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정육세트와 고급 과일 등 고급 식료품과 참치, 통조림 등 규격식품도 새로운 장르로 떠올랐다. 기업 총무팀 관계자들은 이 당시 인삼·꿀·영지버섯 등 건강식품과 넥타이·지갑벨트세트·스카프·와이셔츠 등 잡화류를 추석 선물 리스트에 올렸다고 밝혔다. 가족에 대한 의미도 강조되기 시작해 아이들을 위한 종합 과자세트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만이 아닌 직장 상사들을 위한 부하 직원들의 선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직장 상사에겐 커피세트·비누세트 등 생활용품류나 88·솔·한라산 등 당시의 고급 담배가 전해졌다.

1990년대는 IMF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갈린다. 1990년대 들어 경기가 엄청난 호황을 맞이했다. 고가품 추석 선물이 임원급뿐만 아니라 차장급에게까지도 보내졌다. 정육 갈비 및 과일류, 수삼, 인삼, 민속주 등 건강 관련 상품도 늘어나고, 신변 잡화류 및 취미생활 관련 상품, 양송이, 더덕 등 토속 식품도 강세를 보였다. 그리고 추석 선물 최고의 아이디어로 꼽히는 상품권이 나타났다. 백화점 상품권·호텔·외식업체·주유권 등 종류도 다양했으며, 10만원권에 이어 30만, 50만원 등 고액권도 등장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IMF는 기업 추석 선물 자체의 기반을 흔들어놨다. 각 기업들은 추석 선물 목록이 아닌 구조조정 리스트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영상태가 좋은 기업들도 눈치를 봐야 했다. 온 국민이 ‘금모으기’에 동참하는 시기에 갈비세트를 보내다가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추석 선물은 중소기업에서 활발하게 진행됐다. 어렵지만 마음을 모아 회사를 살려보자는 취지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실속형 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양말세트, 비누세트 등 1만~2만원대 알뜰형 제품이 때아닌 추석 호황을 맞은 것이 이때였다.

2000년대 추석선물의 가장 큰 변화는 홈쇼핑과 인터넷쇼핑, 택배다. 선물을 직접 전달하기 것보다 배송하는 서비스가 대중화된 것이다. 기존 선물군인 갈비세트·양주·상품권 등의 강세는 여전했다. 여기에 추석 선물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웰빙제품이다.

친환경·유기농 제품 등 건강 관련 상품이 늘어났으며 이에 힘입어 올리브오일, 포도씨기름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세대 취향의 추석 선물도 늘기 시작했다. 한 인터넷 쇼핑몰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기업 추석 선물 리스트에 MP3와 디지털카메라, PMP 등 디지털 기기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6년 추석, 가장 많은 대기업이 말하는 선물은 ‘14분의 1’이다. 연봉을 12등분이 아닌 14등분해서 한번은 설날, 또 한번은 추석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총무팀 관계자는 대부분의 직원이 선물보다 현찰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도 ‘14분의 1’이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결국 직원들이 가장 원하는 선물이 가장 좋은 선물 아니겠습니까?”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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