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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책 성패에 소장래 좌우"|셰바르나제 소외무의 제28차 당대회 연설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행한 제28차 당대회 대표지명 수락연 설을 통해 소련 고위관리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파산지경에 이른 소련경제의 실상과 아프간사태 등 소련 외교정책의 공과를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소주간지 리테라투르니 야가제타에 전문이 소개된 이번 연설에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소련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다음은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연설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주】
소련공산당과 소련국민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패」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와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 결속을 지키기 위해 내건 공산주의 원리준수의 슬로건이 가져온 결과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반대자에 대한 탄압과 당으로부터의 축출, 그리고 생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또한 공포·대량처벌 등으로 인한 「전인민의 비탄」뿐이었다.
당은 곁으로 드러난 「철저한 복종」과 안으로 감추어진 「내적 반항과 이견」으로 골이 깊게 패게 됐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씨가 뿌려진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내적 불만과 고질적 병폐에 대한 거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을 급진파와 보수주의자로 쉽게 나누는 일은 결과적으로 당을 분열시킬 뿐이다. ,
만일 페레스트로이카가 실패하면 독재체제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원칙은 이미 공개됐고 행동도 이미 시작됐다. 소련지도층에 대한 공격도 실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2월 개최된 중앙위원회총회에서 지도층의 일부인사가 축출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강력히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소련내 「극렬분자」들로부터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수많은 어려움에 지쳐있는 인민들의 마음을 교묘히 부추겨 화약통에 불똥을 튀기려는 교묘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
현혹된 대중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사회폭발」현상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이다. 더욱이 자연재해와 인증분규로 황폐화된 소련땅에 핵무기와 화학무기가 밀어닥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당 지도부가 비효율적이며 게으르고 과감성이 결여돼 있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의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환부를 악화시켰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낙관론은 유행의 뒤안으로 처져있는 셈이다.
그러나 소련의 미래, 특히 소련경제의 미래에 관한 한 낙관적이다. 새로운 경제구조가 자리잡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법률적인 토대도 마련됐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가격분야의 복잡한 구조와 씨름도 하고 있다. 이는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작업이지만 우리는 단호히 이 일에 착수할 것이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추진돼온 「중군정책」이 오히려 중요한 지역에서의 국방력 약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미국과의 군사력 균형에 만족해 있는 동안 심지어 1회용 주사기 생산에서조차 균형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낙후돼 있다는 사실을 잊고있었던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비판자들은 우리가 「계급원리」를 배신했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주사기·내화복·인공기관장비·횔체어 등과 함께 의사와 골수까지 보내주는 계층은 다름 아닌 우리의 「계급적 적대계층」이었다.
소련은 위대한 국가이며 당연히 위대한 국가로 존중돼야 한다는 의식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뿌리깊이 박혀 있으면 도대체 어떤 점에서 소련이 위대하다는 말인가. 영토? 인구? 군사력? 아니나 인민의 고통? 혹은 인민의 권리부재? 생활의 무질서?
세계 최고수준의 유아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는 소련이 과연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본인은 아프간협정에 조인하고 제네바에서 돌아오면서 기쁨과 슬픔이 반반 뒤섞인 묘한 감정을 경험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6백억 루블에이르는 전비지출을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기뻤을 것이다. 반면 결코 전승협정이라고 할 수 없는 합의문에 외무장관으로서 서명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 역사상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하는 일이었다.
본인은 현 세계사의 모든 문제는 소련의 참여 없이는 단 하나도 제대로 결정될 수 없다고 말한 한 정치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결정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 이루어질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냉전은 이미 「과거사」가 돼버렸다. 소련의 군비도 실질적으로 지난 2년에 14%나 감소했다. 세계 전체의 군사력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요컨대 군사적 대결의 시대는 점차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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