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숲-푸른하늘」의 도시 영 세라필드|주민들 방사능 오염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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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영국 세라필드 핵연료 재처리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자녀가 암의 일종인 백혈병과 림프선종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우샘프턴 대학의 「핵피폭보고서」(일명 가드너보고서)로 이 공장근로자들과 인근 주민들 사이에 공포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미 백혈병으로 자녀를 잃은 네 가족은 최근 핵연료 재처리공장 소유주인 영국핵연료공사를 상대로 지난해 가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뒤이어 약 50여 피해가족들도 집단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공장의 노조도 근로자들의 피폭실태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공개할 것을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호수와 숲과 푸른 하늘」로 유명했던 목가적인 세라필드 지방은 영국정부가 지난 52년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건립하고 세계 각 국의 핵폐기물을 끌어 모아 재처리작업을 실시하면서부터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공장설립 후 이 지역 어린이들이 백혈병에 걸리는 숫자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핵처리 공장에서 장기간 근무한 사람들은 임파선종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드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50년부터 85년까지 백혈병이나 혈액질환인 비호지킨성 림프선종에 감염된 74명의 어린이 중 18명의 아버지가 세라필드 핵재처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드너 보고서는 백혈병의 부자간 혈연상관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핵재처리 시설 주변의 방사선오염도와 백혈병의 상관관계는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인근 수산시장에서는 『이 새우와 조개는 이 부근에서 잡은 것이 아닙니다』는 「해명성 광고문」을 내걸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공장 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인과관계가 분명히 입증된다면 당연히 보상금을 지급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입증된바가 없지 않느냐는 태도다.
더욱이 영국 의학계에서도 『백혈병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역학적으로 보아 방사선과 백혈병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가드너 보고서가 불러일으킨 논쟁은 법정과 학계에서 동시에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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