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에 "섹스산업" 은밀한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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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일통일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는 요즘 동독사회에서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한「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다름 아닌「섹스산업혁명」.
지난 40여 년간 사회주의적 순수성을 그런대로 잘 지켜 오던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서독에서 밀려오는 섹스산업의 물결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식당이나 생필품가게 앞에 길게 늘어섰던 인파행렬이 이제는 포르노 잡지나 섹스비디오테이프를 파는 이동판매트럭 앞으로 옮겨졌다.
라이프치히·드레스덴 등 동독주요도시에서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이동판매트럭 앞에는 보통 아침7시부터 1백∼1백50m의 긴 행렬이 늘어선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에서 정복차림의 경찰관이나 군인, 날품팔이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동독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기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보통 수 시간 내에 4만5천 권의 포르노잡지가 판매되는데 물건이 떨어질 때쯤이면 아귀다툼이 벌어진다.
이처럼 동독사회에 일대 성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은 서독의 섹스기업인인 베아테 우제씨(70·여)다. 현재서독에서 여성내의와 도색잡지·섹스기구와 섹스용 인형 등을 전국적 판매망을 통해 판매, 수백만 마르크를 벌고 있는 그녀가 이제는 동독으로 판매망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동독시민들이 이처럼 포르노잡지 등 섹스산업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동독에는 전혀 이런 류의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잡지래야 대부분 정부의 시책을 선전하거나 사회주의 이념을 홍보하는 재미없는 것뿐이었고 섹스기구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자유화 물결이 일면서 일단 개방이 되자 플렌스부르크에 있는 우제 사의 동독총판매본부에는 하루 1천여 건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지금까지「근엄한」자세를 견지하던 동독 인들이 이제는 노골적이 됐다. 이러한 섹스용품 일습을 구입한 한 부부는『기뻐서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고 서슴없이 고백하고 있다.
현재 서독에는 우제 사 외에 섹스기구나 섹스필름제조업체에 1만 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고 연간매출액도 7억5천만 마르크(약 3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사실 전세계를 휩쓰는 AIDS공포로 서독의 섹스산업은 몇 년 전부터 불경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동독이라는 새로운 황금시장이 출현, 서독섹스산업은 다시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동독에서는 섹스용품 가게나 포르노잡지 등 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법이 개 정되거나 나아가 통일이 되는 날이면 동독에 대한 서독 섹스기업의 공세는 한층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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