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없는 길(157)-내 마음의 왕국(5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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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나는 기억한다.
어머니는 그대 기생의 족찐머리를 풀고 비녀를 뽑아 내렸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입던 화려한 무늬의 한복을 벗고 상복에 가까운 흰빛의 옷으로 갈아입었었던 것을. 나는 어머니의 말대로 대학에 입학하여 맞춘 대학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지금에야 알 수 있다. 어머니는 나를 자랑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찾아가는 아들인 내가 자랑스런 대학교에 한푼의 등록금도 내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음을 아버지의 영혼 앞에 자랑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참으로 먼길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을 헤맨 것 같은 꿈속의 일인 것처럼 아득히 느껴지고 있다. 계절은 지금보다 조금 빨라서 온산과 들에는 진달래 천지였었다. 저 먼 길가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이곳 무덤까지 줄곧 걸어만 왔었다. 어머니는 그때 햇볕을 가리느라고 양산을 쓰고 있었고 무덤에서 먹을 음식을 가지들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양산을 들고 한 손에는 먹을 음식을 담은 보따리를 든 어머니가 안쓰러워 내가 몇 번이나 그 보따리를 든 다고 우겨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였었다.
『어사또 나으리께오서 계집년들이나 들고 다닐 음식 보따리를 들고 다니시면 쓰겠소. 그저 맨손으로 가시오. 맨손으로만 가시오.』
그때는 이곳까지 이르는 먼길이 맨산이요, 맨숲이라 지천으로 진달래에 개나리꽃이고, 철쭉에 벚꽃이라, 쉬엄쉬엄 어머니는 쉬었다 쉬었다 가면서 이따금 숲 속에서 뻐꾸기 우는소리도 함께 듣곤 하였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향기가 나는 화려한 꽃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꼭꼭 찍으면서 이렇게 탄식하곤 하였었다.
『참 좋으요, 잉. 이렇게 아드님이신 그대와 이 멀고먼 산골에 나와 앉아서 철철철철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듣고. 오메, 저 산에 들에 허벅지게 흐드러져 핀 꽃들도 본께 참으로 좋으요, 잉.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쌍년의 꽃들이 저리도 고울까, 잉. 이렇게 아드님이신 그대와 나와 앉아서 저 산골짝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소리 들으니 참으로 미치게 좋소, 잉. 뻐꾹뻐꾹 뻐꾹뻐꾹. 무엇이 슬프건디 저리도 슬피 우는가, 잉.』
어머니가 어머니의 표현대로 「아드님이신 그대」인 나와 단둘이 걷는 그 산길에 취해서 그처럼 기뻐하고 그처럼 즐거워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줄곧 이렇게 짜증을 부리면서 볼멘소리로 재촉을 하였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직 갈 길이 멀었나요?』
최인호 이우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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