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을 보는 세 시각/진덕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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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늘 우리 사회를 정부ㆍ여당은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사회적 갈등이 위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 같다. 흔히 사회적 갈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서로의 이익 대립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거리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이 점점 심화되어 마침내 편을 갈라 극단적으로 대결하게 될때 이를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회를 위기라고 규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을 의미하게 되며 지금이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순간에 있음을 전제하게 된다.
현재의 상황을 난국으로 규정하든,위기로 규정하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서로 다른 주장이 있는 것 같다. 전환기적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변혁기적 상황으로 설명하려는 논리도 있고,침하기로 분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 이들 관점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간단하게 그 의미만을 가늠해 보기로 하자.
○불가피한 과도기 혼돈
지금을 전환기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주로 정부와 여당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 논리는 현실적 위기를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교체할 때에는 다소간의 혼돈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순간적인 어려움에 불과하다고 낙관한다.
그런가 하면 오늘의 이 상황을 변혁기로 파악하려는 논리는 지금의 이 혼란과 위기를 사회변혁의 총체적 과정에서의 연속적 단계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므로 이 논리는 현실적 고통과 어려움은 기존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미래에 창설될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당연히 지불되어야 할 대가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위기를 침하기적 현상으로 파악하려는 주장은 앞의 두가지 시각과는 기본적인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환기적 인식이나 변혁기적 시각은 현실을 이행기나 과도기로 설정해 그 다음에 다가올 미래를 더 좋은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전환기적 인식이 그 미래를 기존체제의 개혁적 발전으로 생각한다면,변혁기적 시각은 그 미래를 기존체제의 극복과 신체제의 형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침하기적 인식논리는 현실적 위기의 지속성을 주장하면서 그것은 마침내 전체사회를 점점 더 하강곡선으로 유도하게 될 것으로 예견한다. 그러므로 침하기적 분석은 현재의 위기가 그 어떤 새로운 사회를 대두시키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사회의 각 부분과 영역은 상당할 정도로 집단화 되어있고,그러한 집단의 세력은 일종의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사회적 경사를 가져오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로 얽혀 함께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형국을 보여주게 되리라는 인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극복가능성 모색 우선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러한 시각적 차이로 설명하는것 자체가 지나치게 사변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다 중요한 사실은 난국으로 규정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그 어떤 가능성의 모색이 일차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몇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감히 지적하기로 하자.
그것은 첫째,현실상황에 대한 집권세력의 인식전환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현실을 전환기적인 것으로 바라보려는 인식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6공화국의 지난 2년여 기간을 단순히 전환기적 상황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서 현재의 이 상황은 우리가 지난날 그처럼 힘겹게 이룩해온 그 모든 것들,즉 민주화의 열정과 경제성장,심지어 국민적 자신감마저 소진시킬 수 있는,그리하여 또 다른 회한으로 응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집권지배세력은 전환기라는 논리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 어려움을 넘어서서 미래에 이룩하려는 그 사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주는 정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민주화라는 말만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기대감이나 합일적 결속력을 얻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국민들은 민주주의는 하나의 과정이며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결국 인간중심의 공동체를 창조해가는 방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연히 민주화의 대장정이라든가,신사고라든가,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말만으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동체장 마련 힘써야
셋째,전환기적 혼돈을 극소화하기 위해서도 집권여당내의 파벌은 불식되어야 하며 미래의 권력구도 때문에 빚어지는 마치 정상배와 같은 분파성도 종식되어야 한다. 국민은 몇몇 정치가들의 이합집산에서 타협된 미래의 대권향방에는 관심이 없다. 어느 정치가를 대통령으로 하고 누구를 국무총리로 약정하는 따위의 내각책임제 개헌같은 것은 국민의 현실적 관심과는 너무나 먼거리에 있다.
오늘의 이 위기 본질을 가늠하여 6ㆍ29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의 결단을 되새길 수만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전환기라는 주장도 타당성을 지니게 될 것이며,침하기적 상황일까봐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고,변혁기적 지향성을 추구하려는 사회세력도 인격적 공동체의 장에 나와 함께 손을 맞잡는 그러한 미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이대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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