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협조가 관건(부동산 투기대책 점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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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매각대상 선정작업 고심/은행ㆍ증권ㆍ보험업계 발빠른 움직임
망국병으로 일컬어지는 부동산 투기를 잡기위해 강력한 행정력이 동원된다. 「총체적 난국」을 조성하고 있는 경제내외적 요인 가운데 부동산 투기병만큼은 최우선적으로 치유되어야 한다는 민심을 등에 업고 취해진 것이다. 정부의 투기억제대책이 어떤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지 세차례에 걸쳐 알아본다.【편집자주】
재계는 그동안 정부의 대기업부동산매각 조치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으나 7일 노태우 대통령의 담화에서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정책이 재차 천명되자 그룹별로 처분대상부동산 선정작업에 들어가는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계가 정부의 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단 정부에 협조키로한 것은 현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구노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각 그룹들은 이에 따라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네차례 5∼10대그룹 기획조정실ㆍ비서실장 모임을 갖고 대책을 거듭해 왔으며 8일 경제6단체장회의에 이어 10일의 전경련기조실협의회에서도 부동산문제를 협의할 계획이다.
특히 재계는 기업의 자구노력이 담긴 선언적 성격의 공동성명서 발표도 검토중이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의 「불요불급한」부동산의 판정기준이 명확지 않아 매각대상 부동산의 선정에 고심을 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 및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은 타의에 의해 매입한 부산의 극동호텔과 서울 영등포의 1천2백여평이 비업무용부동산으로 지적된만큼 이들을 매각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와 전주제지가 조림용으로 보유하고 있는 임야중 상당량을 내놓을 것을 검토중이다.
현대그룹은 남양만매립지 1백여만평,선경은 충북영동의 조림지 1천2백여만평중 상당부분의 매각을 검토중이다.
럭키금성은 구자경회장이 7일 계열사사장단에 『불요불급한 부동산은 처분하고 근로자주택건설에 힘을 기울여 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내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현재 자율경영방침에 따라 계열사별로 매각대상 부동산의 선정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대우그룹은 조선합리화에 따른 자구노력으로 부산수영만 부지,서울 당산동 물류센터등을 매각하는 외에 인천 등의 자투리 땅등 모두 10여만평을 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동산재벌로 알려진 롯데그룹은 주력사업이 관광ㆍ유통부문으로 비교적 노른자위 땅을 갖고 있어 매각대상부동산 선정에 고심하고 있으며 코오롱그룹은 경북 경주소재 72만평의 임야를 매각대상으로 꼽고 있으나 결론이 나지않은 상태다.
이밖에 한진ㆍ효성ㆍ두산ㆍ대농 등 대부분의 기업들이 처분대상부동산 선정작업에 들어가 있다.
부동산 매각에 비교적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은행 및 증권ㆍ보험업계.
25개 증권사는 7일까지 회사별로 매각계획을 세운데 이어 8일 증권업협회에서 이를 취합,관계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적인 매각부동산 범위를 매듭지을 계획이다.
증권사들은 현실적으로 보유부동산이 지점등 업무용이기 때문에 매각대상 선정에 한계가 있으나 86∼88년의 증시호황때 번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였고 최근의 경제난국 및 증시침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측면에서 「가시적인 효과가 있을 만큼」상당량의 매각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매각규모는 장부가액기준 전체 보유부동산의 20%가 넘는 1천5백억원어치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생보사들도 보유부동산의 분류대상작업에 들어갔는데 대한교육보험은 용인 체력단련장,제일생명은 대전사옥부지를 각각 매각할 방침이다.
그러나 재계일각에서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 여전히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7일의 10대 그룹기조실장회의는 오전 7시30분부터 11시까지 3시간30분 동안이나 끄는등 진통을 겪었으며 회의가 끝난후 일부인사들은 『정부의 부동산강제매각조치는 사유재산권 침해가 아니냐』며 법적근거 미비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 유창순 전경련회장은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일의 수순이 잘못됐음을 비판했다.
최종현 선경그룹회장도 최근 계열사인 서해개발이 육림을 위해 땅을 많이 갖고 있는데 대해 비판이 일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GNP의 15%를 생산하는 30대 재벌기업이 전국토의 0.4%를 갖고 있고 이중 비업무용은 이중에서도 0.4%에 불과한데 부동산투기의 주범으로 기업을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투기의 주범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강남 등의 불로소득자』라고 주장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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