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험로 헤칠 통치권 천명/“총체적난국 수습”… 대통령 특별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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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낙관론 탈피… 「불신」 시인 이례적/「결단」 기다린 국민기대완 거리
노태우대통령은 7일 시국관련 특별담화를 통해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한 현재의 시국상황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표명과 함께 각계의 자발적 협조를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문두에서 정치ㆍ경제ㆍ사회 각분야에서 조성된 어려움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정부가 국민의 신뢰감을 얻지 못한 점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이례적인 책임시인은 현재의 시국상황이 경제난국과 겹쳐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노대통령이 금년말까지로 시한을 정해 자신의 각오와 자세를 강조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급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수없이 쏟아놓은 「민주화」의 꿈같은 청사진과 근거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해온 노대통령의 시국인식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밝힌 구체적 수습책,즉 ▲법질서의 확립 ▲대기업및 금융기관 과다보유 부동산의 매각을 통한 부동산 투기억제 ▲불법노사분규의 강력대처 ▲기업의 투자의욕고취및 경쟁력향상을 위한 정부의 지원등은 국민에게 새로운 기대를 주거나 실추된 신뢰를 회복시킬만한 획기적 내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정부의 정책은 정부만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둘 수 없다며 근로자ㆍ기업 등 사회 각계각층이 난국극복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 것은 대통령의 인식이 말만큼 행동을 수반하는 강력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미흡하다.
이같은 인식은 보기에 따라서는 난국을 초래한 원인이 정부의 잘못에만 있지 않고 근로자ㆍ기업 등의 과도한 욕구분출및 준법정신 결여와 무분별한 기업활동에도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대통령의 결단과 실천의지를 목타게 기다리는 국민일반의 느낌과는 다소 거리를 느끼게 한다.
노대통령이 말은 점잖게 하더라도 이번 담화가 기업들의 과다보유 부동산 강제매각을 통해서라도 투기를 잡고 불로소득에 중과하며 불법행위에 대한 단호하고도 엄정한 법 집행을 할 것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 주목거리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담화를 내면 반드시 증권값이 떨어지는 현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단 값이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번 믿어보자는 심리가 국민들에게 스며있음을 알게한다.
노대통령은 어떻든 이번만큼은 해이된 사회분위기를 바로잡아 나가지 못하면 위기상황앞에 고삐를 놓치고 말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있는 것 같다.
특히 경제문제와 함께 정치문제에 있어서도 3당통합으로 탄생한 민자당 창당과정에서 보여준 실망감을 지적,민자당이 하루빨리 단합된 모습을 갖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앞으로 정국운영도 신뢰감 회복에 초점을 맞출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의 특별담화문은 결국 노대통령이 정치ㆍ경제ㆍ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통치권차원의 비상한 자세로 직접 나섬으로써 최근 야기된 각분야의 난국을 해결하고 집권후반기의 통치기반을 확고하게 다져나가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이규진기자>
◎노대통령 담화문<요지>
우리나라가 정치ㆍ경제ㆍ사회 각분야에 걸쳐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 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즈음 국민의 불안이 높아진 것은 민생치안,법질서의 문란등 전환기적 현상이 가시지 않은 데다 최근의 몇가지 사태가 상승작용을 한 데서 빚어지고 있습니다.
3당통합으로 정치적 안정의 바탕이 마련되었으나 체질이 다른 정치세력을 통합하여 새로운 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국민은 정부의 안정의지조차 믿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집값이 올라 내집마련의 꿈이 멀어진 수많은 국민들의 허탈감,전ㆍ월세값이 뛰어 이사를 해야하는 서민의 고통이 컸습니다.
여기에 물가가 불안하고 한때 주식값이 크게 떨어져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도 높아졌습니다.
올들어 국민여러분의 새로운 인식과 근로자들의 자제로 노사분규는 크게 줄어들고 노사관계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방송인 KBS의 장기 불법제작거부사태와 이에 이은 현대중공업의 불법파업이 사회불안을 확산시켰습니다.
이같은 모든 현상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저는 늦어도 금년말까지는 국민 여러분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안정을 이루도록 비상한 각오와 자세로 국정을 이끌 것입니다.
정부는 이 기간안에 해야 할일의 우선순위를 가려 이를 강력히 추진하고 특히 다음과 같은 노력을 집중적으로 벌여나갈 것입니다.
첫째,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정한 법 집행으로 이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울 것입니다.
둘째,대기업과 증권,보험회사등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과 과다한 부동산은 강제매각을 해서라도 처분토록 하고 기업이 생산활동보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풍조는 고치겠습니다.
이미 공포된 토지공개념관계법과 4월13일 발표한 부동산투기억제대책을 통치권차원에서 강력히 실천토록 할 것입니다.
셋째,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최대한 보장하겠지만 불법분규나 노사관계를 이탈한 정치적 목적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하겠습니다.
넷째,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하고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과 기술개발을 최대한 지원하여 우리경제의 안정성장을 이루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경제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는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경제는 현재 7%내외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고 고용과 경기도 나쁜 편이 아닙니다. 수출도 완만하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들어 물가가 4.7%로 다소 높게 올랐으나 연말까지 7,8% 수준에서 그 고삐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에 짙게 깔린 불안심리가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데 있습니다.
경제는 정부의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힘이나 지시로 모든 것을 해내라는 것은 또다시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어려운 때입니다.
정부가 할 일은 대통령인 이사람이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저는 특히 다음 사항에 대하여 각계 국민 여러분께 각별한 협조를 구합니다.
발전의 혜택을 더 입은 기업인과 경제계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각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지 직시하여 이 사회의 안정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는 일을 자율적으로 해주기 바랍니다.
갈등의 소지가 되고있는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활동에 꼭 필요하지 않은 부동산은 스스로 처분하고 노사와 국민화합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주어야겠습니다.
근로자 여러분은 이제 더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임금인상을 생산성 향상의 범위내로 자제해 주어야 합니다. 임금과 근로조건은 최근 2∼3년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언론과 지도층은 정부의 잘못도 비판하지만 이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바로잡는 데도 소신있게 나서 주어야 합니다.
여유있는 계층은 과도한 소비와 사치를 자제하고 화합하는 사회를 이루는 데 더 큰 책임을 져주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협조해가면 현재의 국면은 머지않아 극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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