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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개발 경험예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3세계를 후진국·저개발국·개발도상국 등과 동의어로 파악할 때 과연 한국을 그 범주에 넣어도 괜찮을까.
교역량만으로는 세계 10대국 안에 들고 1인당 국민소득이 5천달러에 육박하면서 신흥공업국(NICS) 의 선두주자로 「아시아의 네마리용」 가운데 한마리로 등천하기에 이른 한국을 제3세계의 일원으로 끌어 앉히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종속이론을 포함하는 제3세계 논의가 한창 들끓던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제 한국은 제3세계 혹은 저개발국의 멍에를 벗고 당당히 선진국대열에 뛰어들었다는 자부심에 들떠있다. 이런 위상실정이 일반화하고 있는 때에 제3세계를 운위하다가는 쉽사리 「시대착오적」 이란 말을 듣게될 소지가 없지 않다.
심상필 교수 (홍익대) 가 최근 펴낸 『제3세계』 (민픔사) 는 이처럼 시의에 얼마간 논의의 여지를 남기지만 반드시 한국만이 아닌 제3세계 일반에 대한 기초 학문적 접근을 꾀하고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심교수가 제3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파리대학교에 유학하고 있던 1960년. 지도교수가 과제물로 내준 조슈에 드 카스트로의『기아의 지정학적 고찰』 이란 책을 읽고부터였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도불했던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후진국 국민이란 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어요. 종속이론의 선구적 업적으로 40년대에 출간되자마자 세계 36개국어로 번역되는 등 선풍을 일으킨 카스트로의 이 저서를 읽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얼굴은 열기로 벌겋게 달아올랐었다고 심교수는 그때 자신이 겪었던 충격의 순간을 전한다.
그 후 파리학계에서 후진국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알고 스스로도 「개발도상국」이란 강좌를 2년간이나 들으면서 제3세계와 관련된 논저·자료들을 닥치는대로 모아들였다.
『그러나 개도국의 문제가 간단한 처방에 의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지구 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족과 인간의 현재 또는 미래의문제에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섣불리 이 분야에 뛰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자료는 계속 모으고 있었지만 학교 일이며 강의 등이 작업을 제약하기도 했고….』
그러던 중 87년 대우재단이 연구지원과제로 『제3세계』를 내놓았고 스스로는 30여년 전에 관심을 쏟았던 테마 라는데서 진부한 느낌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기초학문 정립을 위해 한개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심정으로 저술작업을 맡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에 그가 퍼낸 『제3세계』는 「모든 사회는 산업사회이거나 산업사회를 지향한다」 는 R 아롱의 명제에 맞춰 유럽선진국들처럼 제3세계에서도 과연 산업화가 가능한가를 따져본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혁명기를 시발로한 유럽 선진국의 산업화추진사례들을 검토하고 있는데 통념과는 달리 그는 선진국들의 상업화가 농업혁명에서 비롯됐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한다. 즉 농업혁명으로 농촌이부유해지면 사람들은 식량이외의 의류에 눈을 돌리게 되어 직물공업이 일어나게 되고 여기서고도의 기계화가 요구되면서 다시 제철업· 석탄공업의 발흥을 가져오는 식으로 산업화과정에 끊임없이 연관효과를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시설재 산업의 이 같은 연관효과메커니즘에 의해 유럽선진국들은 독립적이고도 자기중심적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후진국들은 농업혁명에 의한 농촌의 부를 배경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수도 없으며 처음부터 고도의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시실재 산업을 갖출 수도 없기 때문에 서구형 산업화의 전철을 따르기에는 난점이 많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제3세계의 산업화개발전략을 모색하면서 사회주의를 선택한 쿠바, 자생 및 내부지향형의 인도, 수출주도의 외부지향적 길을 걷는 신흥공업국군 등 3개의 유형별 경험을 예시하고 있다.
각기 다른 유형의 이들 제3세계가 어떻게 불평등교육과 그에 따른 가치이전을 극복하여 자본축적을 이뤄갈 수 있는가를 검토하면서도 그는 문자그대로 경험에 대한 객관적 예시에만 머무를뿐 그 성패를 논하는데는 매우 조심스러운 대도를 견지하고 있다.
『역시 제3세계는 각 국이 보유한 인적· 물적 기초와 역사·문화· 경제· 사회 등의 전반적 구조를 충분히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개발전략을 채택해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작정 서구선진국의 전례를 따를 수는 없으며 산업화의 성공을 보장하는 「틀」 도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산업화만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회의를 느끼게 뵀다는 심교수는 제3세계가 선택할 가장 좋은 길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전체적으로 개발전략에 이용해 가는 바이오매스 (Biomasse)뿐』 이라고 강조한다.

<추귤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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