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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걷은 대통령/위기국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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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증시 붕괴에 충격 낙관적 인식 바꿔/“또 엄포용 아닐까” 국민불신이 문제
노태우대통령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30일 증권값이 대폭락,증시가 붕괴현상을 보이자 경제특별대책을 내각에 긴급지시했고 또 1일 아침에는 예고없이 공장들을 방문,5공식의 현장방문점검까지 벌였다.
이같은 노대통령의 행보는 지난 2년간 보여주었던 참고 기다리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3당통합후 낙관적인 전망에서 느긋해하던 분위기에서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3당통합 성사로 인한 낙관적 분위기에 휩싸였고 전ㆍ월세값 폭등,노사분규확대에도 불구하고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구름위를 헤매고 있었다.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조차 그들이 갖고 있는 위기의식을 청와대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청와대측은 「세계에 유례없는」 여야합당을 치른 후 급속히 보수적인 자세로 되돌아섰고 금융실명제보류,개혁입법 추진포기 등 수구적 자세로 국민의 강한 비판을 받게됐는데도 국회의석의 절대적 다수만으로 정권 안정이 확보됐다고 믿어왔다.
이들은 대구ㆍ충북 보궐선거의 참패배경에 민심이반현상이 드러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마침내 증시가 붕괴하고 객장폐쇄사태가 이르러서야 위기의식이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한 것 같다. 증권시장은 정권안보를 위해 6공이 국민주를 풀어가며 중점적으로 육성한 것인데 그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정권의 하종가」를 예고하는 위험지수가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온갖 부문에서 나사가 풀린 현실을 더이상 방치하다간 혼란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남미국가들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청와대를 엄습한 것이다.
사회ㆍ경제적 혼란을 더이상 6공화국의 캐치프레이즈인 민주화의 대가로만 계산하기에는 그 영향이 너무 크고 이젠 환부의 깊이가 너무 깊어진 게 아니냐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노대통령이 27일 경제장관들을 불러 『이제부터는 경제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독려한 것이라든지,30일부터 청와대내부의 비상 근무체제를 지시한 것은 이같은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측은 우선 당면한 경제난국과 맞물려있는 노사분규는 초반에 공권력투입 진압이라는 강권수단을 동원할 작정이다.
현대중공업ㆍKBS에 경찰을 투입,진압한 것도 강권수단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 전반,특히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노사분규가 전국규모로 확산,노동자와 정부간의 강경대립상태가 재현되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희생으로라도 경제난국을 극복하기만 한다면 위기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기본인식이다.
노대통령이 30일 특별경제대책 긴급지시에서 증권ㆍ보험회사 및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되팔도록 강력히 유도하고 물가안정을 위해 소비풍조억제등 국민들의 협력을 얻기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토록 하고 「가능한 모든 대책」을 강구토록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와같은 노대통령의 지시와 정부의 호들갑스런 조치들이 어느정도 먹혀들고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청와대 한 비서관은 『노대통령 자신이 대통령을 향한 시중의 비난여론과 평가를 잘알고 있다』고 했으나 대통령을 가까이서 대한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태평」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관심은 자신의 방일문제에 더 쏠려 있었고 경제등 내치는 참모들의 「말씀자료」이상 크게 관심을 두고 고민한 것 같지 않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과 참모들은 비록 4월말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7%를 기록하고 무역수지적자가 10억달러를 기록하는등 적신호가 켜졌지만 지난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7%를 기록하는등 아직 우리경제는 잠재력에 손상을 입을 정도의 위기라고까지 단정하기에는 일러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청신호로 바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사분규ㆍ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경제회복에 있어서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부유층으로부터 과소비ㆍ호화사치자제의 협력을 얻어내면 우리경제는 충분히 회생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대통령자신이 경제의 속성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며 노대통령의 통치행위나 스타일이 불신받고 있는 점을 간과한 안이한 판단이란 지적이 많다.
위기인식을 제대로 못하거나 정경유착상태에서 공무원의 부패현상이 만연해있다는 사실때문에 정부측의 긴급처방이나 노력이 어느정도 신뢰받을 수 있을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노력들을 또 엄포가 아니겠느냐고 보기도 한다. 언제 또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노대통령이나 현 정부가 현상황을 어느 정도의 위기로 보고 정책을 추진해 나가느냐에 따라 정권의 신뢰회복이 결정될 것이며 「권력안보」의 안이한 자세로 나간다면 이번 위기는 6공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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