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언어습관 내세워 주인공 인식세계 표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운동권 인물과 그에 얽힌 여러가지 대소 사건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리 작가들의 시선을 힘 있게 끌어 모은 소재가 되어왔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소재들은 소재가 일반화 되다 보면 어지간한 접근법이나 서술 방법으로는 작가가 기대한 만큼의 공감을 사기가 어려운 법이라는 이치를 확인시켜 주게끔 되었다.
바로 김성옥의 단편 『늙지 않는 병』(『문학사상』4월호)은 어지간한 접근법과 서술방법에 도달한 적절한 실례라고 하겠다.
이소설은 대학시절의 동지애에서 출발해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된 한 남녀가 그후 삶의 방법의 근본적인 차이가 노정되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 보인 것이다.
김성옥은 한 왕년투사의 「반전」으로 요약되는 후일담을 들려 주기보다는 그 왕년투사와 아내와의 굴곡이 심한 관계와 처제인 「나」의 눈에 비친 「그」와 언니의 고집스런 모습을 그리는데 역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제목 자체에서 잘 암시받을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에선 「변화」와 「가치있는 삶」 이란 문제에 대해 「나」의 언니와 형부가 좀처럼 한곬로 몰릴것같지않는 제나름의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화소가 가장 깊게 주제에 관여하고 있다.
여기서 언니는 형부를 향해 변해도 너무 많이, 또 한심하게 변했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반대로 형부는 언니를 두고 불변증이라는 고질병을 앓고있는 환자로 단정해 버린다.
『늙지 않는 병』에서는 의식에서 생활로, 최소한의 정의감에서 맹목적인 출세주의로,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진보논리에서 비기적인 현실순응의 태도로 철저하게 방향을 바꾸어 버린 「그」의 삶의 경우에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언니 편에 서 있으면서도 때로는 언니와 형부를 향해 양비론의 태도를 취하거나 오부관의 분위기를 풍겨 내기도 하는 「나」의 존재도 단순한 보조적 인물로만 볼 수는 없다.
내레이터인 「나」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도 의식과 생활사이의 거리, 그리고 근접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헤아리고자 한 이소설에 하나의 분명한 실례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한 개인의 근본적인 변질과 그에 따른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불화의 분위기를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어떻게」의 측면에만 치중했을 뿐 「왜」의 측면은 소홀히 한 결과를 드러내고 말았다.
만일 작가 김성옥이 작중의 형부란 인물이 어떤 이유로 변신을 거듭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명을 적극적으로, 또 명시적으로 행하였더라면 『늙지 않는 병』은 보다 충실한 동시대인연구에 값하는 결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작품에서 형부라는 인물은 말끝마다 「이해해달라」「이해하겠냐」와 같은말을 덧붙이는 언어습관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언어습관을 통해 평소 「그」가 자신의 배신행위나 변질에 대해 깊은 자의식을 가진 것임을 짐작케 된다.
이러한 자의식은 변신의 동기를 부분적으로나마 대신 설명해주는 것일 수 있다. 특정한 언어습관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작중인물의 인식세계의 뿌리를 건드리고자하는 방법은 김성옥의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잘 일러주는 한 근거가 된다.
조남현 <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