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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명동은 서울이란 거대도시의 으리번쩍한 소비문화를 집약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지역이라 할수 있다. 위정자들이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다』고 할때 실상 그것은 환상을 심어주는 일종의 CM에 불과할 뿐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명동만은 선진의 문턱이 아니라 이미 그 안방에까지 이르렀다 할만큼 화려한 지역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명동에 어느날 갑자기 코뿔소 한마리가 나타나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오규원은「명동, 2」(문학정신)라는 시에서 그렇게 짖궂은 질문을 던지듯 실제로 코뿔소 한마리를 백주의 명동거리에 등장시킨다. 시의 본문을 인용하면 그대목은 「낮달에 뿔을 걸고/본 적도 없는 거대한 코뿔소/한마리가 저쪽에서 곧 오리니」인 것이다.
코뿔소의 등장으로 일어날 사태는 누구나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할 것이고 따라서 거리에는 일대소동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피해도 적지않게 발생할 것이 분명한 그 사태는 그러나 비극적인 것이라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배꼽을 쥐고 웃어야 할 희극인 것이다. 그 희극성은 두가지의 엉뚱함이 겹침으로써 더욱 고조된다.
우선 명동이란 첨단적인 도시문명의 현장과 원시적인 코뿔소의 만남이 엉뚱하고, 다음으론 그 만남때문에 명동의 화려함이 간단히 유린당해 버리는 결과가 또한 엉뚱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 후단의 사태는 평소 힘자랑이 대단했던 거인 알라존이 꼬마 에일런의 불의의 일격을 받고 보기좋게 나가떨어지는 고대 희랍의 희극의 패턴을 방불케 하는 것이다. 알라존과 에일런의 그러한 관계는 주지하는 바와같이 아이러니의 원형을 이룬다.
그러니까 오규원의 이 시가 노리고 있는 것은 명동과, 또 명동이 상징하는 현대의 도시문명 알라존에 대한 코뿔소 에일런의 아이로니컬한 비평적 일격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같은 비평이라도 아이러니는 비평적 의도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말하자면 일종의 위장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도 철저한 위장으로 비평적 의도가 드러나지 않게끔 시침을 떼고있다. 작중의 화자가 혼자 명동 거리를 거닐면서 「좌의 테라스, 우의 청솔밭/… /피자 전문집으로 가는 길이냐/ 말구유 냄새가 나는 집으로 가는길이냐.」고 자문하고 있는것은 그 좋은 보기가 된다. 그 자체만을 볼 때 그것은 비평적 함축을 갖는다기 보다도. 오히려 미소를 자아내는 환상적 독백이라 할수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명동에는 「청솔밭」이나 「말구유 냄새가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솔밭의 자연과 향수어린 말구유 냄새는 오래전에 완전히 추방된 거대도시의 한복판, 그것도 첨단적인 소비문화만 범람하는 지역에 명동은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명동에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되는 청솔밭과 말구유냄새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명동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아닐수 없는 것이다. 코뿔소의 등장은 그러한 풍자가 참으로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얻어낸 신랄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대로 명동의 화려함과 아울러 도시문명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이 풍자가 아이러니 본래의 철저한 위장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 시의 방법론적 평가점이 된다.
이형기 <시인·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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