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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들어옛사람을보다] 흑산도 선유봉과 정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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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봉에서 바라본 바다.

이 책을 일컫는 수사는 몹시 화려하다. '이 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서'라거나 '당대 세계 최고의 어류박물지'라 불리곤 한다. 어떤 책인가.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 '현산어보'라 읽기도 함)다. 어디서 썼는가. 그가 15년 간 유배를 산 흑산도(黑山島)에서다. 고독한 낙도에서의 유배란 거의 지옥이었으리. 그러나 정약전은 바다 속 어류와 교제해 희귀한 명품을 생산했다. '자산어보'는 유형(流刑)의 지옥 바다에서 건져 올린 기발한 월척이다.

<흑산도> 글=박원식 월간 '사람과 산' 편집위원 <david2010@hanmail.net>
사진=신준식 '사람과 산' 기자 <po1sjs@dreamwiz.co.kr>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흑산도 예리(曳里)에 도착한다. 바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예리항 일원은 여행자들로 출렁인다. 이 발랄한 관광 지구 한 모퉁이에 자산문화도서관이 있다. 정약전을 기리는 기념 공간이다. 정약전의 흑산도 귀양은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년)에서 비롯됐다. 신유사옥은 천주교도 제압이라는 명분으로 분장된 권력 쟁탈극이었다. 이 난폭한 정치적 공격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추락했고, 그의 아우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강진으로 유배됐다. 정약전은 정약용처럼 빛나는 저작들을 무진장 쏟아내지도 않았으며, 당대 문사들과 사교하는 도락을 누리지도 못했다. 생의 황금기를 유배의 겨울로 소진했던 그는 마치 독 안에 갇힌 쥐처럼 흑산도의 고독 안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약전의 학식은 부실한 것이었는가. 아니다. 정약용이 매번 원고의 감수를 청탁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머리는 지식으로 충만했다. 연구자들은 정약전의 학문이 정약용에 손색없는 당대 최고 수준의 것이었으리라 유추한다. 경학은 물론 지리.음악.천문학 등에 박식한 준재였음을 승인한다. 이 이채로운 지적 엘리트의 사유 세계와 시대 정신이 옹골차게 농축된 품목이 바로 '자산어보'라는 위대한 저작이다.

작은 사진은 사리마을 사촌서당.

예리를 벗어나 사리(砂里)에 있는 정약전의 유일한 유적인 사촌서당(沙村書堂)에 입장한다. 복성재(復性齋)라 부르기도 하는 이곳에 정약전이 살며 마을의 학동들을 가르쳤다. 조선의 유배객들이 흔히 그랬듯 정약전 역시 서당 아르바이트를 호구지책으로 삼은 한편, 본능에 속할 학자적 자존심을 다해 후학 양성을 도모했다. 그리고 여기서 불후의 걸작 '자산어보'를 썼다.

그나저나 '자산어보'는 무엇으로 그 탁월함을 인정받는가. 이 책은 총 226개의 표제 항목으로 분류한 각종 수산 동식물들의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법 등에 대한 매우 방대하고도 엄밀한 사실적 기록을 담고 있다. 중국의 문헌을 정리하고 고증하는 종래의 저술 방식을 극복, 해양 생물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심지어 해부까지 해서 얻은 놀라운 성과물이다. 일테면 50개가 넘는 청어의 척추 뼈를 일일이 세어 맞춘 그의 집요한 과학에는 현대 생물학자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한다.

사촌서당 뒤편의 소로를 따라 선유봉(仙遊峰, 307m)으로 향한다. 소나무.동백나무.후박나무들이 러시아워의 지하철처럼 초만원을 이룬 푸른 숲 사이로 어렵사리 산길이 이어진다. 정약전이 선유봉에 올랐다는 기록이나 일화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약전이 이 산에 오르지 않았을 가망성은 제로다. 그는 얌전히 방안에만 머무는 꽁생원이 아니었다. 분방한 탐구심으로 팽배한 행동파였다. 조선의 소나무 정책을 통렬히 비난하고 개선책을 제시한 '송정사의(松政私議)'라는 걸 쓸 만큼 산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암동마을을 거쳐 심사리재에 닿은 뒤 선유봉을 오른다. 산의 사방 팔방에서 바다가 떠오른다. 마치 거대한 연꽃이 수면 위로 부상하며 벌어지듯이 몸을 여는 먼 바다의 나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이윽고 선유봉 꼭대기에 오르자 바다는 이제 차라리 추상적 무한 지평으로 진급한다.

정약전은 광막하고도 신비한 저 해양의 묘경(妙境)을 바라보면서 어떤 상념에 잠겼을까. 유배의 고난을 견딜 지혜를 바다에 청원했을까. 창망한 바다의 표면적에 상응할 통 큰 호연지기를 배양했을까.

아마 그는 번번이 눈시울을 적셨으리라. 바다 건너 강진땅에 머문 유배 동기이자 정신의 반려인 아우 정약용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두 형제는 마치 부당한 결별을 강요당한 연인들처럼 몽매에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나 정작 상봉하지 못한 채 그 형이 먼저 한 줌 풀 거름으로 돌아갔다. 정약전의 부음(訃音)을 전해들은 정약용은 땅을 치며 통곡했다. "오! 현자(賢者)가 그토록 곤궁하게 세상을 떠나시다니. 그 원통한 죽음 앞에 목석(木石)도 눈물을 흘릴 텐데 다시 말해 무엇하랴!"

*** 여행정보

■선유봉 등산로=산행 기점은 사촌서당 옆 오솔길. 서산머리 방향으로 1시간쯤 걸은 뒤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다시 1시간 안짝에 암동마을이 있다. 이후 20분쯤만에 심사리재에 도착, 무선전화기지국 정문 계단 좌측으로 열린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 오르면 선유봉 정상이다. 심사리재를 등산 기점으로 삼는 한결 간소한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산행 중 도움 정보가 필요할 때는 흑산면 해오름산악회(010-3185-1743)로 문의한다.

■교통=일단 목포에 도착해 여객선터미널에서 흑산도로 가는 쾌속선을 탄다. 매일 오전 7시50분, 오후 1시20분, 오후 2시에 흑산도 경유 홍도행 여객선을 운항한다. 흑산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50분. 요금은 일반 2만6700원(편도). 피서철이나 주말엔 증편이 되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운항 시간이 변경되므로 반드시 사전에 확인한다. 문의 남해고속 061-244-9915.

■맛집=예리항 일원에 미화횟집(061-246-5502), 바다횟집(061-275-8938)을 비롯한 다수의 식당이 있다. 사리마을 사촌서당 인근에 있는 부두민박(061-246-3587)은 맛깔스러운 토속 음식과 쥔장이 직접 만드는 약초막걸리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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